지난해 8월 어느 날 새벽 3시쯤 벌어진 일이다. 30대 남성 A씨는 서울 강남구 한 골목길에서 집으로 향하던 여성 B씨를 발견하고 뒤쫓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 처음 본 여성을 80m나 따라갔을 때, B씨는 거주 중인 빌라 건물에 도착해 집에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A씨는 B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빌라 1층의 공용주차장을 지나서 B씨가 서 있던 공동 현관문 앞까지 뛰어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서있던 B씨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A씨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지르며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그래서인지 A씨가 빌라 건물 안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처럼 타인의 주거지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 공동 현관문 앞까지 쫓아갔지만,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않은 경우 '주거 침입죄'로 형사처벌이 가능할까. 법원 판단은 무죄였다. 현행법상 주거침입이 인정되려면 범행 장소가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주거 공간’이란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해당 주차장은 개방된 영역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해당 빌라는 1층에 벽 없이 기둥만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얹은 필로티 구조였다. 1층에 공동현관 출입문이 설치돼 있고 나머지 빈 공간은 주차장으로 사용됐다. 주차장 진입로 방면은 뚫려 있어 사람과 차량이 오가고, 나머지 3면은 인근 건물들과 맞닿아 담이 설치돼 있었다.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해당 주차장은 주택가 생활도로에 접해 있어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빈번하고 자유로운 구조”라고 강조했다. 공간 자체가 개방돼 있으므로 ‘침입’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A씨는 “공동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손잡이를 잡고 열려고 하지 않았다”며 건물 침입 시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례상 정원이나 엘리베이터, 공용계단과 복도 등도 주거침입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 공간에 담이나 대문 등 경계가 있어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이런 판례에 비춰볼 때, 이 사건 발생 장소는 주거침입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는 “빌라와 인접한 도로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차량이 왕래하고, 빌라에는 외부 차량과 사람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과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빌라 1층 주차장에 외부 차량이 허락 없이 주차하는 일이 빈번하고, 인접 도로를 지나는 사람과 차량이 주차공간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차장에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