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에서 ‘탈원전 정책’ 기조에도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대한 논의가 최근 본격화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국내 주요 전력원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날씨 변화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요동치는 불안정성이 해결돼야 하는데, 이를 보완할 보조 발전원으로 SMR가 부상하고 있어서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사업에 직격탄을 맞았던 두산중공업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SMR 개발에 나서면서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5일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300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생산하는 SMR는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냉각제 펌프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시킨 소형 원전이다. 기존 대형 원전의 150분의 1 정도 크기로, 설치가 쉽고 건설비용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고 발생 시를 대비한 대형 원전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반경 16㎞여서 넓은 부지가 필요한 반면, SMR는 반경 230m만 있으면 충분하다. 사고 발생률도 기존 원전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향후 선진국에 분포된 노후 원전들의 빈자리는 물론, 개발도상국들의 원전 수요를 SMR가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이유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 약 1,000기의 SMR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한 가운데 시장 규모도 4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에너지정책에서 SMR를 차세대 원전으로 언급했다”면서 “향후 글로벌 원전사업은 SMR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우리나라에선 SMR 개발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해 12월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SMR’ 개발이 정부 차원에서 첫 공식화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SMR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 보조 발전으로 적합해 탄소중립 시대에 적합한 에너지원이라는 평가”라며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기조에도 SMR는 예외가 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달 14일엔 국회와 정부, 원자력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혁신형 SMR 국회포럼’이 출범하면서 SMR 개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혁신형 SMR 국회포럼의 공동위원장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맡았는데, 여야 모두 SMR 개발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업계에선 두산중공업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미국 원전업체 뉴스케일에 4,4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국내에서 SMR 사업을 선도하고 있다. 뉴스케일은 지난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최초로 SMR 설계인증 심사를 통과한 업체다.
두산중공업은 뉴스케일을 통해 앞으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서 최소 13억 달러 규모의 SMR 주요 기자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과거 국내 모든 원전 사업을 도맡아 하던 두산중공업이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어려워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국내에서 SMR 사업이 본격화되면 두산중공업에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