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대면하는 한일 외교수장... '공수 역전' 현상 뚜렷

입력
2021.05.05 09:00
5면
한미일회담 계기 한일 외교장관 첫 대면
한일회담 타진에 日 냉담한 반응 고수
과거사 가해자 일본이 되레 고압적 태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가운데 한일 외교장관회담 개최를 두고 속을 끓이고 있다. 한국이 한일 양자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반면 일본이 확답하지 않으면서다. 한일 간 '공수 역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 장관은 5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장관과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한다.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개최는 지난해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이후 1년 3개월 만이다. 지난 2월 정 장관 취임 후 한일 외교수장 간 첫 대면이다. 정 장관은 아직 모테기 장관과 전화통화도 못하고 있다.

다만 한일 외교장관회담 여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정 장관은 전날 한미 외교장관회담 뒤 취재진에게 "한미일이 만난 뒤 (한일 양자회담을) 하게 될 것"이라고 회담 개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4일까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일 외교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은 한국의 회담 요청에 냉랭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외교부는 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 전부터 일본 측에 의사를 타진해 왔지만 외무성은 "모테기 장관의 일정이 많다"는 취지로 확답을 미루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한일 외교장관이 서서 대화하는 '스탠딩 약식 회동'이나 조우 형식의 간단한 대화로 그칠 수도 있다.

외교 관례를 고려할 때 일본의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과거사를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양국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나 뮌헨안보회의 등에서 한미일 회담과 맞물려 양자회담을 개최해왔다. 지난해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한미일 회담 후 모테기 장관과 양자회담을 가졌다.

한일관계에 밝은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이번 G7 회의에서 한국과 회담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강제동원 및 위안부 판결과 관련해 자국이 수용할 수 있는 확실한 해법을 제시하기 전에는 한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이와 관련해 "한일 간 공수 위치가 바뀌고 있다"며 "현 정부가 묘수를 내지 않는 한 공수 역전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양국 간 과거사 합의가 한국 사법부 판결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삼권분립'을 앞세워 관여하지 않으면서 과거사 가해국인 일본 측의 "한국의 국제법 위반"이라는 목소리만 키웠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지난달 21일 관훈클럽토론에서 "우리는 현실적 대안을 여러 차례 제시했지만, 일본은 더 나은 대안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일본이 과연 이럴 자격이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도쿄올림픽 등을 염두에 두고 관계 개선을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일본 태도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조영빈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