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2차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한 데 대해 북한 선전매체들이 뒤늦게 비난하고 나섰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외교수장들의 대면이 이뤄지는 시점에 북한이 과거사 문제를 고리로 존재감 부각에 나선 모양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4일 황해북도 재판소 소속 백우진 판사 명의의 글을 통해 지난달 21일 나온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양심과 정의에 대한 외면이고 사회 역사적, 민족적 책임에 대한 회피이며 투항이자 굴종"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일제의 성노예 범죄는 천추만대를 두고 끝까지 청산해야 할 특대형 반인륜죄악"이라며 "피해자들이 완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소송을 건 것은 적법하며 응당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비판에 가세했다. 매체는 "(한국 법원 판결은) 천년 숙적 일본의 치 떨리는 과거 죄행을 비호 두둔하는 반민족적이며 매국배족적인 망동"이라며 "두고두고 온 겨레의 지탄과 배격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대남방송 '통일의 메아리'는 "피해자들의 투쟁과 일본의 책임을 무시하는 퇴행적 판결로써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며 "법원은 실현되지 않은 정의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상응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한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국가(주권) 면제'를 일본에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북한이 남측과 일본을 겨냥해 비난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북핵 문제가 논의될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2주 전 판결에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정치적 압박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의 담화 폭탄 이후 북한은 도발 조짐 없이 한미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후속 입장 표명이나 조치가 없었고, 군사적으로도 특이 동향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도 지난달 29일 청년단체 '사회주의 애국청년동맹' 제10차 대회 폐막 후 기념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