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백신 아냐?" 논란의 AZ 백신, 50대 기자가 맞아보니...

입력
2021.05.03 11:00
독감백신보다 덜 아팠지만 개인차 커 
젊은 여성이 중년 이상 남성보다 고생
폐기백신 최소화 위한 '예비명단' 통해
혈전증 이슈 AZ백신 1차 접종 마쳐

아재(기자) : “야 이거, 물백신 아냐?”

A원장 : “물백신이나 아재 인증 이런 말 나오는 게 좋은 거다. ‘아재 아니더라’ 하면서 아픈 것보다는 백배 낫다.”

아재 : “남들은 아파서 고생한다던데, 해열진통제 없인 잠도 못 잔다던데...(아재 인증이 못내 서운한 목소리로)”

A원장 : “진짜 아파봐야 그런 소리 안 하지.”

지난달 29일 낮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아스트라제네카(AZ·아제) 백신을 맞은 기자가 그날 저녁 대구지역 한 백신접종 위탁의료기관 A원장과 나눈 대화다.

폐기 최소화 위한 ‘예비명단’으로 접종

AZ백신, 일명 '아제' 백신을 둘러싼 이슈가 뜨겁다. 한쪽에선 부작용이 겁난다며 순서가 왔는데도 발을 빼는데, 다른 한쪽에선 먼저 맞겠다고 아우성이다. 기자는 50대 중반 남자다. AZ백신 위험성보다 효용성이 훨씬 크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조기 접종 기회가 오자 "이런 행운이 있나"하며 기꺼이 접수했다. 공식 접종대상은 아니지만, 백신 폐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국이 마련한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고, 기다리던 순서가 왔다. 새치기 접종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혀 둔다.


나이 탓인지 독감백신보다 안 아파

접종은 AZ백신 접종 위탁의료기관으로, 평소 진료차 종종 들르던 대구지역 A병원에서 했다. 예약 후 도착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내민 문진표를 작성했다. A4용지 앞뒤가 빼곡할 정도로 문항이 많았다. 잠시 더 대기하다 들어선 진료실에서 의사의 문진이 다시 시작됐다. 몇마디 주고받은 뒤 의사가 직접 왼쪽 어깨 부위 근육에 주사했다. 지난해 독감예방주사보다 덜 아팠다. 그들의 접종 실력이 좋았던 것인지, 주삿바늘이 더 가늘어서인지, 주사액이 달라서인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언제 놓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접종은 찰나에 이뤄졌다. 접종 후 대기실에서 얼추 30분가량 기다렸다가 이상이 없자 병원문을 나섰다. 간호사는 "타이레놀(진통제) 몇알 준비해 가세요"라고 했지만 그냥 차에 올랐다.

이후에도 기자는 지난해 접종한 독감백신보다 아프지 않았다. 접종 6시간가량 지난 당일 저녁 귓속 체온계로 잰 체온은 35.8도. 접종 전 36.3도보다 되레 낮았다. 접종한 왼쪽 팔이 조금 묵직한 정도. “물백신 아냐”라는 생각이 또 고개를 들었다. 그날 잠도 편히 잤다. 다음날도, 주말도 심한 활동은 자제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근신’한 것일 뿐, 몸에 무리가 와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방역당국, 시·군·구별 2~10개의 접종 위탁의료기관 지정

당국은 지역별 접종센터나 보건소와 별도로 시·군·구별로 2~10개의 위탁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한다. 지난달 중순까지 장애인 등 돌봄사, 항공 승무원, 병의원 약국 등 종사자를 대상으로 사전 예약을 받아 18일부터 순차적으로 접종하고 있다. 최근엔 경찰 등 사회필수인력에 대한 접종도 시행 중이다.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여성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이 생긴다는 이슈에 따라 30세 미만은 접종에서 제외됐다.

AZ백신, 개봉 6시간 내 접종해야

AZ백신은 1바이알로 10명을 접종할 수 있다. 최소잔여형 주사기(LDS)를 이용해 실제로는 12명가량 맞을 수 있다. 사전 예약이 7명 이상일 경우에만 주사제를 개봉할 수 있게 한다. 개봉 후에는 6시간 이내 접종해야 한다. 주사약이 남아도 6시간이 넘으면 폐기할 수밖에 없다. 냉장고에 다시 보관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10명이 예약하더라도 2명가량 여유가 있다. 예약 후 당일 건강상태나 개인 사정으로 접종하지 못하는 ‘노쇼’도 있을 수 있다. 예비명단 접종제를 도입한 이유일 테다. 위탁의료기관에서 예비명단 대상은 별도의 자격 제한이 없다. 예비명단으로도 부족하면 당일 진료차 온 환자 등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접종할 수 있다. 단순 새치기 접종을 막기 위해 사전예약보다 현장접종이 많을 경우 접종기관에 불이익을 주는 안전장치도 있다. 최근 갑자기 예비명단을 통한 접종 가능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일부 위탁의료기관은 대기자가 넘쳐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정부가 2차 접종을 마친 뒤 2주가 지나면 해외여행 후 입국 시 자가격리를 면제하기로 하면서 조기접종 희망자는 더 늘고 있다. 게다가 AZ백신도 부족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접종 기피자가 있다고 해서 조기접종 기회가 많다는 보장도 없어 보인다. 아직은 AZ백신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통증, 개인차 크고 여성·젊은 층이 더 심해

위탁의료기관 종사자나 접종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60대 이상보다는 30, 40대가 애를 먹는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접종기관에서는 AZ백신 접종자들에게 진통제 몇알씩 미리 준비할 것을 권고한다. A병원 원장은 “구체적인 통계치는 없지만, 40대는 진통제 4알, 50대는 2알, 60대는 없어도 되거나 1알 정도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일부는 접종 후 1, 2일 동안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0대도 사람에 따라 출근이 곤란한 경우도 있다. 그만큼 개인차가 크다는 의미다. 대구지역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젊은 직원 1명은 접종 다음날 출근했다가 진통제를 먹어도 눈동자가 풀릴 정도로 고통이 심해 조퇴하기도 했다”며 “감염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백신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을 꺼리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말했다.


방역당국, 접종자 대상 이상유무 수시로 확인

접종이 끝난 29일 질병관리청은 2차접종 안내와 접종 후 주의사항 등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이어 접종한 지 3일 된 2일 오전에는 1차 이상반응 신고 안내 문자가 또 날아왔다. △39도 이상의 고열이 나는지 △두드러기나 발진, 얼굴이나 손 부기 등과 같은 알레르기 반응 여부 △접종부위 통증, 발열, 피로, 근육통이 이어지는지 등을 묻고 이상반응이 있으면 즉시 신고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12주 뒤인 7월 중순 2차 접종이다. 2차 접종 후 2주가 지나면 자가격리도 면제받을 수 있다.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은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계속 지켜야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이 아재에게도 자유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대구= 정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