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 중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이 부인 홍라희 여사에게 가장 많이 돌아가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애초 홍 여사가 자식들의 '이중 상속'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분 가치가 가장 높은 삼성전자 지분은 포기할 것이란 전망이 컸다. 하지만 홍 여사가 가장 많은 상속으로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서자, 도리어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 그의 역할론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남긴 삼성 지분(19조 원) 중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에게 가장 많은 5조4,000억 원 상당이 돌아갔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5조 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조5,000억 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4조1,000억 원) 순으로 상속이 이뤄졌다.
삼성 일가는 삼성생명 지분만 이 부회장에게 절반을 몰아주고 나머지 계열사 주식은 홍 여사와 자녀들이 법정비율(1.5대 1대 1대 1)대로 상속했다.
상속 지분 중 가장 규모가 큰 삼성전자(15조 원) 지분이 법정비율대로 배분되면서 홍 여사는 삼성전자의 개인 최대주주(2.3%)로 올라섰다. 애초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유족들이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주거나, 적어도 홍 여사는 자식들의 이중 상속세 부담을 우려해 삼성전자 지분은 포기할 거란 증권가 전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삼성 일가가 '가족 화합'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미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터라, 이 회장 지분을 누가 물려받든 큰 변화가 없는데 굳이 법정비율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미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 굳어져 있다. 특히 이번에 홍 여사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을 포기하고 이 부회장에게 몰아주면서,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로선 그룹 매출의 80%를 책임지는 삼성전자 장악력이 더 강화된 셈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분 상속으로 지배구조에 변동이 생긴다면 모를까 이미 이 부회장 체제가 완성된 상황이라 유족들로서도 법정비율대로 나누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주면 상속세만 9조 원에 이르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혼자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다.
아울러 삼성은 지난달 28일 상속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세금과 기부를 통해 사회공헌을 실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삼성전자 지분을 자녀들만 물려받았다만, 이중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뒤따랐을 테고 이는 고인의 사회공헌 의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상속세를 이중으로 내더라도 투명하게 상속 절차를 끝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앞으로 홍 여사가 보유 주식을 활용해 경영권 방어나 계열분리 등 대형 이슈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개인 최대주주로서 집안 또는 외부로부터 지배구조가 위협받을 때 이 부회장의 지원군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상속 전후 21%로 동일해 가족이 새로 주주로 들어온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건 없고 현재로선 경영권 반란 같은 상황도 상상하기 어렵다"며 "다만 홍 여사가 경영권 안정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