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깨달음이 몰려왔다. 다른 데 푹 빠졌다 정신이 퍼뜩 든 사람처럼. 서로 이렇게나 몰랐나. 이토록 가깝고 애틋한데도. 그렇게 튀어나온 한 마디. "엄마, 오늘 데이트 하자!"
엄마는 설렜다. 덜컥 걱정도 스쳤다. 무슨 일일까. 오늘따라 단단히 붙든 아이 손에 이끌려 들어선 공간, 제각기 사연을 지닌 엄마들이 있었다. 딸과 함께 하려 충남 천안에서 서울까지 달려온 엄마, 영문도 모른 채 늦둥이 아들의 깜짝 제안에 밖을 나선 엄마.
한국일보 '디어마더(Dear Mother) 인터뷰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동화기업 원창홀, 9쌍의 모자·모녀의 특별한 기대와 온기로 홀이 가득 찬 채였다. 참석자들 한 손에는 책 '디어마더'(한국일보사 발행)가 들려 있었다. 누구나 엄마의 역사를 기록하도록 돕는 길라잡이다.
책과 콘서트는 연중기획 '인터뷰-엄마'를 계기로, 독자와 경험을 나누기 위해 기획됐다. 3월부터 크라우드펀딩으로 밝힌 계획에 166명 독자가 반기며 응원·후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후원자 중 최소한 인원이 콘서트에 참석했고, 다른 후원자들은 비대면 생중계로 함께했다.
"언제나 봐도 또 보고 싶은 존재 엄마. 엄마 손을 잡고 등도 쓸어드리면서 다정한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은 한국일보 인스플로러랩장의 따뜻한 인사가 콘서트 문을 열었다. 첫 초대 손님은 배우 문소리씨 모친 이향란(69)씨. 결혼하고 47년을 엄마와 할머니로만 살았다. 변화의 시작은 2년 전이다.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배우'라는 생애 첫 꿈이 그렇게 싹을 틔웠다.
이씨의 등장에 환호가 터졌다. 도란도란 이씨가 풀어놓는 인생사에 객석은 금세 몰입했다. 생의 발자국은 저마다 달라도 '엄마'의 부단한 삶은 모두의 공통분모일 터. 그래도 "결혼을 안했거나 자식이 없었다면 더 일찍 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는 없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안해봤어요. 다만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 미안했죠." 모든 것을 다 퍼주어도 괜히 '미안'하기만 한 엄마, 어디 이향란씨 뿐일까. 객석의 엄마들은 거듭 "나도 마찬가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늘 염려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날씨가 추워 겨울이불을 보낸다."
두 번째 손님, 싱어송라이터 강아솔(34)씨의 기타 선율과 노랫소리가 홀을 공명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고요와 노래 틈으로 곳곳에서 훌쩍임이 새 나왔다. 자작곡 '엄마'는 강씨가 엄마에게 받았던 쪽지의 내용으로 시작한다. 제주의 엄마는 서울로 이불을 보내며 미안하다고 썼다. '뭐가 매일 미안할까' 생각이 많아진 딸은 노래를 썼다. 노래가 끝난 뒤 이어진 인터뷰, 강씨가 이런 작곡 배경을 풀어내자 손수건을 찾는 객석의 손길도 바빠졌다.
연신 눈가를 닦던 송지수(31)씨는 "평소엔 제가 말이 많고 엄마는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오늘만큼은 달랐다"고 했다. "오는 길에 디어마더 책을 펴서 엄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어요. 하나 하나 답을 듣는데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를 잘하는 구나' 싶더라고요. 내가 그간 미처 묻질 못했구나 싶었죠." 모친 이미옥(57)씨는 "착하고 여린 딸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늦지 않았다"며 꿈을 다잡기로 결심하게 된 건 덤이다.
독자들은 경험을 공유할 기회가 생긴 것에도 반색했다. 비대면 생중계로 콘서트를 즐긴 독자 한유주(30)씨는 "책의 취지에 후원을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새로운 인터뷰 콘서트라는 형식을 통해 보통의 사연에 공감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며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빨리 하나라도 더 듣고 싶어졌다"는 의지를 빛냈다.
전날 우연히 이씨의 인터뷰를(▶'문소리의 엄마'에서 '배우 이향란'으로 "지금이 내 황금기")를 읽었다는 이미옥씨는 "안그래도 기사를 보고 감동했는데, 오늘 딸이 데려온 콘서트가 관련 행사인 줄 몰랐다"며 기뻐했다. 모녀는 기사의 감동을, 콘서트에서 더 크게 만끽한 만큼 책을 직접 채워가며 다시 한 번 경험과 감동을 누리리라 다짐했다. 서로 이렇게나 몰랐나. 애틋했지만 멀리 있었던 것은 독자와 콘텐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