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을 위해 정부가 구로동 일대 농민들의 경작지를 강탈한 이른바 '구로농지 사건' 피해자 및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500억 원대 배상금을 받게 됐다. 현재까지 구로농지 사건으로 지급이 결정된 배상금은 1조 원에 달한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 등 농민 64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518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 등은 1949년 시행된 농지개혁법을 통해 토지 대가로 상환곡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 수용됐던 구로동 일대 토지를 분배 받게 됐다. 그러나 정부가 1961년부터 산업진흥 및 난민정착 구제사업 일환으로 구로공단 조성에 나서자 농민들은 분배 받은 토지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일부 농민은 1964년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1973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하지만 또 다른 농민들은 법원에서 토지소유권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자 검찰은 1968년 위증 및 사기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농민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100여 명을 민사소송 취하 및 권리포기를 조건으로 석방하거나 불입건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에도 소를 취하하지 않은 40여 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져 형사재판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구로농지 사건을 '국가가 민사소송에 개입하는 등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에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던 농민들과 유족들은 재심 청구를 했지만, 대법원은 2015년 "재심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심이 불가능해지자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검찰 등 국가의 불법행위로 농민들이 농지를 상실하게 됐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에선 "농민들이 농지를 적법하게 분배 받았음에도 정부가 농민들 권리를 포기하게 할 목적으로 수사기관을 동원해 조직적·체계적으로 공권력을 남용했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까지 구로농지 사건 관련 확정된 민사소송으로 지급된 국가배상금은 1조1,000억 원에 달한다. 법원에 16건의 소송이 계류돼 있어 배상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