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출간된 김세희 작가의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과 단편소설 ‘대답을 듣고 싶어’가 지인의 성정체성을 포함한 사생활을 무단으로 노출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작가는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자신을 “김세희 소설가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의 인희이자 H, 단편소설 ‘대답을 듣고 싶어’의 별이”라고 소개한 A씨는 23일 트위터를 통해 “인희와 H는 실존 인물이며 실제 인물의 외형적 특징과 에피소드를 동의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항구의 사랑'은 2000년대 초반 목포에 사는 여성 청소년들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으로, 인희와 H는 작품에서 레즈비언 여성으로 등장한다.
A씨는 자신이 김 작가와 18년간 친구였으며 “필요에 따라 주요 캐릭터이자 주변 캐릭터로 부분부분 토막 내어져 알뜰하게 사용됐다”고 말했다. “소설을 읽은 주변인들이 성 정체성과 관련한 사적인 질문을 해왔고” “원치 않는 방식으로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대답을 듣고 싶어’에는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사적 대화 및 에피소드들이 처음부터 그대로 실려 있다”며 “이로 인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직업, 투병 과정, 죽음, 장례와 관련된 이야기를 어떠한 동의 절차 없이 지면으로 접해야만 했다”고도 했다. A씨는 그러면서 김 작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항구의 사랑’을 출간한 민음사는 24일 입장문을 내고 “문제제기를 인지하고 작가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하였으나 A씨와 작가 사이에 입장 차이가 확연함을 확인했다”며 “A씨에게 작품 속 인물이 자신임을 특정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에 대해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고 썼다. 민음사는 “A씨가 겪고 있을 고통을 헤아린다”면서도 “피해 사실에 대한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 역시 26일 법무법인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항구의 사랑’은 소설”이며 “인희와 H 모두 작가가 창작한 인물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답을 듣고 싶어’ 역시 소설”이며 “자전소설이라고 해도 허구라는 근본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A씨가 ‘인희’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칼머리’ 역시 “등장인물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외모”일뿐 “누군가를 특정하는 개성이 되는 징표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김 작가는 “소설 속 인물과 에피소드는 작가가 삶에서 겪은 다양한 사람들과 경험을 모티프로 삼고, 여러 문헌과 창작물을 참고하면서 상상을 덧붙여 만들어 낸 허구의 서사”라며 “현실에 기반했더라도 실존인물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한 캐릭터를 쌓아 올리는 수많은 외양과 성격의 특성, 일화와 대사 중 한 두개를 발췌해 특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분신과 같은 작품에 대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결과물이라는 공격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만큼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며 대처하고자 한다”며 “필요하다면 법적 판단을 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는 김봉곤 작가의 단편소설 ‘그런 생활’과 ‘여름, 스피드’가 지인과의 사적 대화를 무단으로 인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해당 작품이 실린 책이 출간 정지와 환불 조치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