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대리전' 벌어지나… 짙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운

입력
2021.04.22 19:40
우크라 요청에 美백악관 무기 지원 검토說
러軍 국경 집결… 크림 병합 때보다 대규모
美·동구 도발에 푸틴, "레드라인 지켜" 경고

우크라이나에 드리운 전운(戰雲)이 짙어지고 있다. 동부 반군을 돕는 러시아가 최근 국경 쪽에 무력을 집중시키면서다. 갈등이 군사 분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해 오던 미국이 유사시에 대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려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대리전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21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설 수 있도록 추가 무기를 보내 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들어줄지 말지 최근 백악관이 검토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실제 침공하려 할 경우 미국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 추가 무기를 지원해 줄 거라는 당국자의 말도 인용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전향’이다. 가급적 군사적으로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가 세운 기본 방침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예정됐던 해군 군함 두 척의 흑해 파견을 취소한 것도 이 지역 긴장이 고조될 듯한 조짐을 보여서였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정상회담을 제안해 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 동향이 워낙 이례적인 게 사실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날 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지난달 말 보이지 않던 러시아의 수호이(Su)-30 전투기가 이달 들어 크림반도 지역에 배치됐다고 전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다가 2014년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지역이다. 영국 BBC방송(러시아어판)도 크림반도 해역으로 군함들이 대거 들어갔고 반도 동부에 군 진지들도 생겨났다고 같은 날 알렸다.

실전용은 아니라는 게 러시아 측 얘기다. 일단 19일 러시아 남부군관구가 50대의 군용기와 흑해 함대 등이 참여하는 공군 훈련이 크림반도에서 실시된다고 밝혔다. 침공 준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도 자꾸 시비를 거는 서방을 향해 무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일지언정 러시아에 정말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가려는 의사가 있는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판단하는 분위기는 심상찮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자국 국경 근처에 이미 배치된 러시아 병력만으로도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 규모를 웃돌고 있다는 게 우크라이나 정부 평가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1주일 안에 러시아군 규모가 12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날 푸틴 대통령에게 자국 동부 교전 지역인 돈바스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건 이런 배경에서다. 돈바스 지역은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교전으로 7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숨진 사람만 1만4,000명이다.

“국제 파트너들의 지원을 받고 있어 러시아가 두렵지 않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호언에는 허세가 없지 않다. 서유럽은 말이 전부라는 게 우크라이나의 솔직한 속내다. 특히 자국과 러시아 간 해저 천연 가스관 연결 사업 ‘노르트 스트림-2 건설’을 지속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독일의 경우 러시아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결국 사실상 뒷배는 미국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예견된 구도다. 정황상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에 바이든 정부 출범 뒤 첨예해진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는 제재와 외교관 추방 형태로 가시화한 미국과 체코ㆍ폴란드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들의 외교 도발에 맞추방 카드로 응수하며 ‘리벤지(보복) 모드’로 들어간 상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대(對)의회 연설에서 “일부 국가들이 이유 없이 러시아를 건드린다. 누가 더 크게 떠드는지를 겨루는 신종 스포츠처럼 됐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누구도 러시아를 상대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으려는 생각을 갖지 말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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