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지난해 2월 제작해 성평등 플랫폼 '젠더온' 등에 게재한 성평등 강연 참고용 영상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뒤늦게 논란이 일었다. 특히 "해당 영상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20일 기준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는 삭제됐지만 '젠더온'에서는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영상 내용을 살펴보면, 이 영상의 내용을 직접 짜고 강연을 맡은 나윤경 양평원장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 성인지 교육의 목적이 아니다"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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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영상에서는 '잠재적 가해자'로 볼 수 있는 사례로 80대 여성을, 상대로는 그가 고용한 한국계 중국 동포인 가사도우미를 설정해 두고, '잠재적 가해자'는 특정 성별이 아니라 특정한 맥락에서 권력을 갖으면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 했다.
이 예시에서는 일당을 선불로 달라는 가사도우미의 말에 80대 여성이 자신을 "돈 떼먹을 나쁜 사람"으로 취급했다며 기분 나빠하자, 딸이 이를 두고 "이전에 임금을 떼인 경험 때문"이라며 "어머니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어머니를 의심하는 것이 삶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폭력과 관련, 여성의 경험도 이와 같을 수 있다는 게 영상 속 나 원장의 설명이다.
여성이 남성을 경계하고 방어적 태도를 취하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가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라든가 "꽃뱀이냐"라는 반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잠재적 가해자' 프레임은 결국 남성의 '기분 나쁨' 때문에 여성을 '딜레마'에 놓이게 한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해당 영상을 여러 개의 '컷'으로 제시하다 보니 이런 맥락이 모두 사라졌고, '남성=잠재적 가해자?'라는 장면과 '나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말하는 장면 등만 싣거나 퍼날랐고, 이를 두고 반응이 뜨겁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16일 페이스북에 이 영상과 관련해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굳이 찾자면,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제목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정성스럽게 증명하면 된다'라는 언급 정도"라면서 "영상의 다른 내용을 모두 무시하고 이 둘만 연결시킨다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동영상이라고 억지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 과장해 갈등을 부추긴 일부 언론 보도가 문제"라고 했다. 다만 이는 애초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당 영상의 장면을 취사 선택해 퍼트렸을 때부터 생길 가능성이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양평원이 애초에 남성과 여성을 둘로 나눠 성평등 문제를 다뤘다고 하기도 어렵다. 특정 맥락에서는 성 고정 관념과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업로드된 '칭찬도 대상에 따라 불쾌할 수 있습니다'에서는 "한국 사회에는 '남자는 능력'이라거나 '남자는 힘'과 같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별 고정 관념과 편견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렇게 말라가지고 어디다 쓰나!"라든가 "남직원이 있으면 뭐하나, 운전대 잡을 사람이 없는데" 같은 말들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으로 예시했다. "'남자답다'라는 구실로 남성에게 씌워져 있는 오랜 고정관념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평원은 13일 설명 자료를 내고 "해당 콘텐츠에 대해서는 이후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내용 전달의 명확성을 기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영상을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평원 관계자는 "10일쯤부터 많은 의견과 외부 문의가 있었다"며 "교육원의 목적상 콘텐츠는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수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해당 영상의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