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인 대만의 TSMC가 올해 설비투자에 역대 최대인 300억 달러(33조5,000억 원)를 쏟아붓기로 하면서, 업계 2위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 벌리는 모습이다. TSMC의 천문학적 투자의 배경으로 "고객사가 줄을 설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TSMC는 지난 15일 작년보다 16~17%씩 급증한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실적을 공개했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오히려 TSMC의 투자 계획에 쏠렸다. 이날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300억 달러를 포함해 향후 3년 동안 설비투자에1,000억 달러(111조9,000억 원)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투자액은 연초 발표(250억~280억 달러)보다 최대 20%나 늘려 잡은 것으로 지난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액(10조 원)과 견주면 3배 이상 많다.
웨이저자는 역대급 투자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3개월 전보다 5나노와 3나노 고객이 더 늘었다"고 답했다. "(TSMC의) 5나노와 3나노 공정을 (이용하겠다는) 고객의 약속이 더 강해졌다"며 "그런데 이런 수요를 감당하기엔 용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선된 공장으로 고객을 지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몇 년 동안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미래 고객을 다 확보했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인재 확보는 물론 반도체 장비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TSMC의 독주가 당연하게 여겨져서인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와의 경쟁 관계 등을 묻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한 미국의 인텔이 잠재 경쟁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웨이저자는 문제없을 거란 취지로 답했다. 인텔과 제품을 두고 직접 경쟁하지 않아 인텔이 TSMC에 계속 위탁을 맡길 거란 설명이다.
TSMC가 투자액의 80%를 미세 공정인 5나노와 3나노 공정에 쏟아붓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현재 5나노 이하 미세 공정이 가능한 곳은 TSMC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TSMC는 내년 상반기 3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혔는데, 이를 감안하면 이미 양산 전인 3나노 공정에 대한 고객까지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공지능(AI) 칩 등이 3나노 반도체인데, 애플, 구글, 엔비디아, 퀄컴 등이 3나노 반도체의 주요 잠재고객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러모로 TSMC에 밀리는 모습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적기 투자로 생산능력을 확충해 (경쟁사인 TSMC와의) 격차를 줄여 나가겠다"고 했지만, 총수 부재로 신속히 투자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고객사들이 TSMC와의 계약을 옮기지 않겠다는 뜻을 알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TSMC와의 격차를 좁히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