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모차르트 오마주'

입력
2021.04.18 10:00
21·22일 롯데홀에서 시닛케 '하이든식의 모츠-아트' 연주하는 서울시향 부악장 웨인 린·신아라

암전(暗轉) 속 무대에서 현악기의 가늘고 높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둠에서 태어난 음들은 음악이라고 하기엔 불분명하다. 어떤 관객들은 곡이 시작됐다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연주자들이 손을 풀거나, 줄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모호한 음형들이 얼마간 이어지고, 갑자기 연주자들의 손이 바빠진다. 트레몰로(Tremolo)가 절정에 이르면 '짠'하고 무대 조명이 켜진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 알프레트 시닛케가 1977년에 쓴 '하이든식의 모츠-아트(Moz-Art à la Haydn)'라는 곡의 도입부다.

이 작품은 △환한 조명 아래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연주자가 입장하고 △얼마간 정적을 거쳐 곡이 연주되는, 통상적인 클래식 음악 공연과 시작이 다르다. 어둠 속 연주자들의 정체는 솔로 바이올린 협주자 2명과 10여명 규모의 현악 앙상블이다. 조명이 켜지고 나서야 편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곡 제목 '모츠(Moz)-아트(Art)'는 '모차르트(Mozart)'를 분해한 말. 일종의 파자(破字) 놀이다. 작곡가가 모차르트에 대한 오마주로서 곡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곡에는 모차르트가 1783년에 작곡에 돌입했으나 완성하지는 못한 작품 '팬터마임을 위한 음악'(K. 446/416d)에 쓰인 선율들이 활용됐다.

하지만 시닛케는 200년 전 선율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는데, 곡 제목을 닮아 분절적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친숙한 선율이 나오는가 싶더니 곧 불협화음들이 침범해 분위기를 망친다. 곡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의 1악장 주제가 등장하지만 잠깐 뿐이다. 곡은 곧바로 현대적으로 변주된다. 현악기 연주자들의 활 쓰기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레가토 방식보다는 빠르게 튕기듯 연주하는 스피카토나 현을 뜯는 피치카토가 많이 쓰였다. 전반적으로 예측가능하기 힘든 곡인데 그 이유는 시닛케가 서로 다른 양식을 혼합하는 '다중양식(Polystyle)'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모츠 아트'의 주인공인 두 대의 바이올린은 꾸준히 주제를 주고 받지만, 썩 친해 보이지는 않는다. 바흐가 작곡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BWV 1043)처럼 화합하며 유기적으로 대화한다기보다는 기가 센 연인의 말다툼을 닮았다. 평범한 연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인지 급기야 둘 중 한 명은 바이올린 줄 감개(펙)를 풀었다가 다시 감는 방식으로 줄의 장력을 인위적으로 조절, 기묘한 비브라토(떨림)를 만들어 낸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주법이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모츠 아트'는 끝날 때도 남다르다. 곡이 완전히 종료된 것도 아닌데 연주 도중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연주자들이 하나 둘씩 무대를 떠난다. 음악은 조명과 함께 페이드아웃(Fade-out)된다. 이런 마무리는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에서 따온 설정이다. 시닛케의 곡 제목에 '하이든식'이라는 부연이 붙은 이유다.

한번 들으면 오랜 여운이 남을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1, 22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협주자로 나서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울시향의 부악장 웨인 린과 신아라. 이들은 악장 자리가 공석인 서울시향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간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리더들이다. 이 둘이 솔로 연주자로서 서울시향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다. 그만큼 이들의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공연을 앞두고 웨인 린은 서울시향 소식지(SPO)를 통해 '하이든식의 모츠 아트'를 두고 "재미있는 음악적 패러디로, 놀라우면서도 때로는 충격적인 불협화음과 색채들이 섞여있다"고 설명했다. 신아라도 "첫인상은 난해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일단 들으면 자꾸 듣고 싶어지는 곡"이라고 덧붙였다.


장재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