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 그들이 원한 건 분리가 아닌 '함께'였다

입력
2021.04.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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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넷플릭스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8년 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간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브리즈번의 한 쇼핑몰에서 선글라스를 파는 것이었다. 워낙 햇볕이 강한 지역이라 선글라스는 필수품이었고, 그래서인지 선글라스를 파는 부스는 쇼핑몰의 한중간 길목에 있었다. 하루에 짧게는 네 시간에서 길게는 여덟 시간 동안 서서 두 개를 사면 할인이 되는 저렴한 선글라스를 팔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볼 수 있었다. 출산 후 단 보름 만에 신생아를 데리고 나온 한 젊은 엄마는 곧 휴가를 간다며 선글라스를 두 개나 사 갔다. 오픈 시간마다 들러 한심하고 성차별적인 농담을 하는 노인이 있는 지점으로 출근해야 할 때는 한숨이 나오곤 했다. 한 10대 무리가 환불을 하러 찾아와 퍼붓는 인종차별도 경험했고, 약에 취한 커플이 찾아와 한 명이 정신을 빼놓는 사이 또 다른 한 명이 선글라스를 훔쳐가는 일도 겪었다. 겨우 서너 달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그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침대를 타고 온 손님이다. 침대를 탔다는 표현이 맞는지, 침대에 실려왔다고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침대가 잠을 자는 자리가 아닌 이동의 도구였으니 '타다'라는 동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장애를 가진 것으로 보였고,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선글라스를 골라주었다. 코의 높이와 얼굴의 가로 폭에 따라 어울리는 테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 뒤 신중하게 선글라스를 골랐고, 다행히 그는 내가 골라 준 선글라스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가 선글라스를 사서 떠난 뒤, 나는 그가 집에만 있을 텐데 왜 선글라스를 사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집에만 있지 않으니까 쇼핑몰에 온 게 아닌가. 그는 쇼핑몰에 온 것처럼, 또 침대를 타든 다른 탈 것과 함께든,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로든 갈 것이다. 선글라스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제야 침대를 타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세계가 내게도 열렸다. 내가 걸어 들어오듯이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침대까지 들어올 수 있는 구조의 건물에서 나는 일하고 있었다. 그날의 경험은 나라와 도시에 대한 인상까지 바꾸었다. 이후 쇼핑몰에서, 길가에서, 시장에서, 강가에서, 레스토랑에서, 여성의 날 시위 현장에서, 어디에서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시장에서 목과 머리를 고정하는 기구를 착용한 사람과 스쳐 지나간 뒤, 같이 있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호주에는 한국보다 장애인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나는 잠깐 생각해보고 장애인이 많은 게 아니라 장애인이 밖에 나오고 활동을 하니까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럼 한국의 장애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이어진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집? 시설? 어떤 답이어도 질문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장애인들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 감독의 영화 '어른이 되면'에서 만났다. 장혜영 감독은 장애인 시설에서 18년간 지내온 동생 혜정과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장애인 시설이 격리와 수용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볼 수 없고, 장애인이 일상을 영위하며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기 쉽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는 또 하나의 답을 알려준다. 장애인을 시설에 머무르게 하는 방식의 분리 정책을 포함해서, 장애인이 드러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서 이동하고, 방문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은 장애인이 머무는 것이 가능한 협소한 공간을 시설화한다. 그곳은 집일 수도 있고 실제 시설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공간일 수도 있지만, 그곳이 어디든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공존할 수 없다면 그곳은 시설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과거의 미국 역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차별하고 분리하는 사회였다. 지금 세상이 조금이라도 이전과는 달라졌다면 누군가 차별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장애 활동가 주디 휴만은 1973년 정부의 분리 평등 정책을 비판하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재활법 504조를 제정할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분리를 멈추십시오. 분리에 대한 논의는 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는 이 치열한 장애인 인권 운동의 투쟁을 향해 떠나기에 앞서, 1970년대의 한 캠프 풍경을 보여주며 여정을 시작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열렸던 이 청소년 캠프(캠프 제네드)는 "너 어디 아파?"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살지 못했던 10대 장애인들에게 낙원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장애가 있고 그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캠프에서 10대 장애인들은 자유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맞게 지어진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고, 어렵더라도 기다림과 통역을 통해 애써서 소통하며,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가족이나 친지가 아닌 타인에게도 기꺼이 '몸을 맡긴' 경험은 이들을 바꾸어 놓는다.

마음껏 웃고 떠들고 움직이고 듣고 말하고 이해하면서 지냈던 캠프를 떠나면서, 한 사람은 이런 말을 남긴다.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없는, 원래 살아가던 세계로 돌아가던 일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일"과 같았다고 말이다. 이 말은 캠프 제네드가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라는 의미와 같다. 주디 휴만을 포함해 캠프 제네드를 경험한 청소년들 중 많은 수가 '어른이 되어' 활동가가 되고, 장애인권, 보편적 인권을 위해 싸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래를 경험한 사람은 결코 과거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수어 통역사 없이는 회의를 시작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한 사람에게 한 번씩 의견을 물으면서, 정직하게 하루하루 싸움을 이어가고, 한 발걸음, 한 팔걸음, 한 바퀴 만큼씩 나아가 승리를 얻어낸다. 모두 함께.


재활법 504조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들이 점거 시위를 벌일 때 등장한다. 흑인 인권을 위해 싸웠던 단체인 블랙팬서는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노조원들, 외부의 다른 인권 활동가 등 성소수자 단체도 이들의 투쟁에 연대한다.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우리 목적도 그거예요."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는 사람들은 늘 더 약하고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이고, 이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도울 게 있느냐고 묻고 달려와 머리를 감겨준다. 밥을 해준다. 살아서 존재하고, 일상을 지키기 위한 기본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사람들만이 서로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크립 캠프'의 '크립(Crip)'은 미국의 속어로 '장애가 있는, 절름거리는, 불구의'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직관적이지 않아서인지 한국어로 붙은 부제 '장애는 없다'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립 캠프에 장애는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장애는 인식일 뿐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는 한국 사회에 장애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루 종일 서울을 돌아다녀도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당장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집을 포함해 내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많은 공간이 장애인은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의 경사면, 엘리베이터, 점자 블록이 생겨나기까지, 저상버스가 도입되기까지 싸웠을 사람들 역시 떠올린다. 더 나은 세상을 믿으며 싸우는 사람들 덕분에 더 나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몫이며, 시민인 나의 역할이라는 것도.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는 미셸 오바마와 버락 오바마가 함께 만든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이 제작한 작품으로, 오는 25일 개최되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그보다 닷새 앞선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윤이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