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그룹들이 최근 들어 잇따라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기업가치 제고에서부터 순환출자 해소와 경영권 승계 등을 포함해 오랫동안 각 그룹에 주어졌던 해묵은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먼저 시동을 건 것은 SK그룹이다. SK텔레콤은 지난 14일 주주가치 제고와 성장 가속화를 위해 인적분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 등을 포함한 유무선 통신회사와, SK하이닉스·ADT캡스·11번가를 비롯해 반도체 및 정보통신기술(ICT) 자산을 보유한 지주회사로 재편된다.
이번 SK텔레콤 인적 분할의 핵심은 회사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다. SK그룹은 SK㈜→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인수·합병(M&A)을 위해선 인수 대상 기업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SK하이닉스가 그간 국내외 유망 기업에 지분 투자나 적극적인 M&A에 나서기 어려웠던 배경이다. 인적분할 후에도 SK하이닉스는 여전히 SK㈜의 손자회사지만,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될 신설 투자전문회사가 활발한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비상장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연내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사실상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공식화했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로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후 보유 지분을 매각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실탄을 확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 회장은 지분 23.2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를 제외하면 핵심 계열사 지분이 많지 않다. 특히 정 회장이 지배구조 정점에 오르려면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결국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에서 확보한 현금으로 현대모비스나 현대차 지분을 매입, 지배구조 단순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 현대차그룹은 4개의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2018년과 비교해 얼마나 시장의 공감을 얻어내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3년 전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려고 했지만,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반대와 실망스러운 현대모비스 주가 흐름까지 겹치면서 자진 철회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김승연 회장이 7년 만에 경영 일선에 공식적으로 복귀하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도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화그룹의 지주사격인 ㈜한화의 최대 주주(22.65%)는 김 회장이다. 반면 장남인 김동관 사장을 비롯해 2, 3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 김동선 한화에너지 상무보의 지배력은 약하다.
대신 삼형제는 또 다른 지주사 형태를 띤 에이치솔루션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한화의 지분을 잇달아 매수하며 지분율 5.17%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에이치솔루션이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에선 한화그룹이 불완전한 지배구조 해소를 위해 ㈜한화와 한화솔루션이 합병하거나 에이치솔루션이 ㈜한화 지분을 추가 매입한 뒤 합병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의 경영권 승계가 성공하기 위해선 에이치솔루션의 막대한 자금 확보가 필요하다”며 “결국 에이치솔루션의 시장가치가 커지는 것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