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중국인들이 하루에 5명이나 와서 꼭 5만 달러씩 송금을 요청하더라. 비트코인 재정거래(차익거래) 때문인 것 같다."
최근 은행권 직원들이 이용하는 익명 사이트에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면서 '김프(김치 프리미엄) 환치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가상화폐를 사기 위한 송금은 명백한 불법이다. 외국인들의 거액 송금은 자금세탁과 같은 불법 용도에 쓰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선 5만 달러 이하의 해외 송금을 막을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어 속만 끓이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난주 가상화폐 관련 해외 송금 유의사항이 담긴 공문을 일선 지점으로 내려보냈다. 평소 거래가 없던 외국인 고객이 갑자기 방문해 개인별 연간 해외송금 한도인 5만 달러 이내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자금 출처와 송금 사유 등을 철저히 확인하라는 내용이다.
갑자기 은행들이 개인 해외 송금에 까다로워진 것은 '김프'를 악용하기 위한 해외 송금이 급증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같은 가상화폐더라도 국내 거래소에서 훨씬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일컫는데, 최근엔 그 차이가 최고 20%까지 불어났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경우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우리나라 업비트에서는 개당 8,165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데 반해 중국계 최고경영자(CEO)가 운영하는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에서는 7,192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바이낸스에서 1비트코인을 구매해 업비트로 보낸 뒤 국내에서 현금화하면 1,000만 원(13%)에 가까운 차익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일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몰래 공유되던 '비트코인 재정거래' 수법은 최근 가상화폐 가격 급증으로 김치 프리미엄이 덩달아 높아지자 조직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외국에 사는 지인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보내 비트코인을 사게 한 뒤 이를 한국에 보내 현금화하거나, 반대로 외국에서 한국 지인과 짜고 비트코인을 사 보낸 뒤 현금화해 다시 해당 나라로 보내는 식이다.
실제로 이달 들어 7거래일 동안 5대 은행의 위안화 보수 송금액(외국 근로자의 본국 송금액)은 지난달 전체의 송금액(907만 달러)의 8배인 7,257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일선 창구에서는 갑자기 5만 달러에 맞춰 중국 송금을 요구하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의심거래 보고가 늘어나기도 했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개인이 증빙 없이 해외 송금할 수 있는 금액은 건당 5,000달러, 1년 총 5만 달러로 한정돼 있지만, 대부분이 분산 송금을 하거나 차명 송금을 하는 턱에 은행 차원에서 이를 완벽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권은 자체 모니터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가상화폐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러있다 보니 관련 규제가 불명확해 은행으로서는 창구 직원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뒤늦게 상황 점검을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김프 해외 송금'을 걸러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화폐 관련한 불명확한 규제가 오히려 김치 프리미엄을 키우고 있다"며 "가상화폐 시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만큼, 당국도 더 이상 손을 놓고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