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 선거에 등장한 야심찬 공약들이다. ‘생태탕’ 네거티브에 가려졌지만 이번 선거에 출마한 서울시장 후보 12명 중 8명이 기후위기·환경 공약을 내놨다. 관련 공약을 내세운 부산시장 후보도 6명 중 3명이다.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는 “플라스틱 없는 구”, “해양쓰레기 수거·재활용” 등 눈여겨볼 만한 정책도 보였다.
그러나 공약과 현실의 괴리는 당장 이들의 선거전만 봐도 심각하다. 환경 공약을 내건 후보들조차 쓰레기 남발 선거를 답습했기 때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거리는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이번 선거에는 약 1만9,900장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거운동 기간(14일) 각 후보는 크기 10㎡의 현수막을 선거구 내 읍·면·동에 2장씩 걸 수 있고, 선거가 끝나고도 인사 현수막을 1장씩 걸 수 있다. 길이 10m 현수막이라고 치면 서울에서 경북 안동까지 거리(191㎞)보다 길다. 한 번 읽고 버려질 공보물도 약 6,395만개가 발송됐다. 벽보·명함 등을 합하면 쓰레기가 끝이 없다.
너나 없는 언행불일치 속에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새로운 선거운동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을 진행한 미래당 서울 송파구의원 후보자 최지선(31)씨다. 최씨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조례가 첫 번째 공약인 만큼 과정도 모순되지 않길 바랐다”고 말한다. 완벽한 ‘제로’는 아니었다. 선거법을 따를 때마다 불가피한 폐기물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최 후보 캠프는 ‘노 플라스틱, 재활용품 사용’을 되새기며 선거를 완주했다.
2월 23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최씨는 구민들을 만날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막상 자신을 알리려고 하니 명함 외엔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송파구 주민 중 몇 명이나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후보자별 명함 개수는 제한하지 않고 있으니, 작은 명함이라도 다량 인쇄돼 상당한 쓰레기를 유발한다. 최씨는 명함을 만들더라도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싶진 않았다. 고심 끝에 나무를 베는 대신 사탕수수 잔여물로 만든 ‘얼스팩’ 종이로 약 1만 장의 명함을 찍었다. 표백한 흰 종이가 아니라 얼굴이 다소 어둡게 나왔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용이 일반 명함의 두 배인 걸 빼면 명함 제작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배송된 명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무줄이면 충분한데도 명함이 플라스틱 통에 담겨 온 것.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명함업체에 전화해 ‘통을 반환하겠다’고 하자 시큰둥했다. ‘으레 하는 서비스를 왜 거절하느냐’는 눈치였다.
유권자에게 보낼 공보물 3만여 장과 벽보 약 200장도 친환경 종이를 썼고, 유성잉크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은 콩기름으로 인쇄했다. 수량은 선관위 규정에 따랐다. 공보물은 8매 이내로 선거구 가구수에 5%의 예비수량을 준비해야 한다. 벽보는 인구 1,000명당 1장이다.
'예비후보자홍보물'은 발송하지 못했다. 종이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엽서 한 장에 공약을 담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홍보물을 반드시 발송용 봉투에 담아야 한다’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 가로막힌 것. 사실 홍보물을 우편봉투에 넣으면 열어보지 않는 유권자가 대다수다. 때문에 투명 비닐에 홍보물을 담는 웃지 못할 관행이 생겼다.
제로웨이스트에 비닐봉투는 가당치 않다. 예비홍보물은 본 선거운동 시작 전 지역 유권자 중 약 10%에게 보낼 수 있는 우편이다. 본 선거운동 시 보내는 공보물이 있으니 포기하기로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김소희 선거사무장은 “여러 후보가 함께 보내는 선거 공보와 달리 예비홍보물은 한 명씩 발송하기 때문에 이름없는 후보에겐 더욱 중요한 수단”이라며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현수막을 쓰지 말까 생각했다. 현수막은 선거운동 수단 중에서도 환경오염 주범으로 꼽힌다. 플라스틱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 매립해도 썩지 않고 소각 시 유해물질이 나오기 때문. 에코백으로 재활용하는 대안도 있지만 수요가 적다. 지난해 총선에서 발생한 현수막 1,739.2톤 중 23.5%(407.9톤)만 재활용되고 76.5%는 소각·매립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9,220톤 중 66.4%(6,127톤)가 재활용되지 못했다. 환경단체들은 아예 “현수막을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첫 출마인데 현수막조차 걸지 않으면 나온 줄도 모른다’는 우려가 캠프 내에서 제기됐다. 현수막을 만들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단을 쓰기로 했다. 일반 현수막보다 비용은 1.3배, 제작기간은 약 5배나 더 걸렸다. 폐플라스틱 현수막 제작은 업체도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선거비용은 득표율 15% 이상 후보에게는 100%, 10% 이상 후보에게는 절반이 보전되지만 그 이하는 제외다. 이번 선거에서 7.01%를 득표한 최 후보로선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비용이다.
선거사무소에는 간판 대신 달력을 재활용한 종이를 붙여 플라스틱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선관위에 제지당했다. 선거규칙은 사무소에는 간판·현판·현수막을 달라고 규정할 뿐 재질이나 규격에 대한 제한은 없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종이에 글씨를 써 붙인 건 간판이라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오히려 등록한 벽보 외 종이를 쓰는 건 불법인쇄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 쓰레기를 줄여보려는 시도가 빈틈없이 막힌다.
선거복은 숨은 쓰레기다. 선거가 끝난 뒤 정당명과 후보 번호가 박힌 옷을 입으면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후보가 다시 출마하지 않는다면 입어도 되고, 정당명이 있어도 선거 180일 이전에는 무방하다”고 말한다. 마지막 출마가 아닌 이상 다시 입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색이 화려하고 가벼워야 하는 선거복 특성상 주요 소재가 폴리에스테르인 것도 문제다. 매번 플라스틱을 버리는 소모적 관행을 바꿀 순 없을까. 김소희 사무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구제 청남방에 스티커를 붙인 뒤 선거 후 떼어내고 입자는 것. 구제시장으로 달려갔다. 빨갛고 노란 옷보다 눈에 덜 띄지만 쓰레기를 줄일 유일한 방법이다.
선거운동을 하며 들고 다닐 현판도 바꿔야 했다. 보통은 폼보드에 벽보를 인쇄해서 쓰지만 이는 스티로폼 소재다. 대신 하드보드지에 종이 벽보를 붙이기로 했다.
선택은 뿌듯했지만 ‘속도전’이 생명인 선거운동에는 걸맞지 않았다. 최 후보와 선거사무원들은 선거운동 개시 직전인 지난달 24일 밤늦게까지 다리미·드라이기를 들고 선거복에 스티커를 붙였다. 선거기간 주말마다 내린 비로 종이 현판이 젖어 벽보를 세 번이나 다시 붙였다. “이럴 시간에 유권자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 하지 않을까.” ‘원칙이냐 당선이냐’ 갈등이 끝이 없었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돌발 상황이 연속됐다. 현수막을 걸다가 한 장이 찢어져 꿰매야 했다. 보통 현수막을 게시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팽팽하게 당기는데 소재가 달라 그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선거 상황이 바뀔 때마다 하루 만에 새 현수막을 인쇄해서 바꿔 걸었지만, 제작에 일주일이 걸리는 폐플라스틱 현수막으론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선거운동 중 명함이 떨어졌을 때도 제작 기간 때문에 결국 일반 명함을 제작했다.
지인들이 응원차 보내는 간식도 문제였다. 비닐포장된 빵과 플라스틱 쿠키를 거절하면서 원망도 샀다. 비닐테이프 등 공용 쓰레기도 계속 발생했다. 처음엔 아예 쓰레기통을 두지 않았지만, 선거일 약 일주일 전에 결국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 하나를 샀다. 선거운동원과 후보 가족 10여 명이 한 달간 줄이고 줄인 쓰레기가 담겼다.
보통 선거 캠프들은 배달음식이나 일회용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최 후보 캠프는 다회용기에 음식을 담아 와서 먹었다. 거리유세 중에는 개인 텀블러에 음료수를 담아서 마셨는데 무겁지만 버틸 만했다.
하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유세로 피곤할 때면 뜨끈한 컵라면 국물이나 배달음식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최 전 후보는 “하루는 너무 피곤하고 추워서 죽을 사러 갔는데, 죽집에서 일회용기에 미리 만든 죽을 데워서 주는 걸 보곤 발길을 돌렸다”며 멋쩍게 웃었다.
선거 쓰레기를 줄이는 게 이렇게나 어려워야 할 일일까. 방법이 없을지 선관위에 문의하니 “선거법상 후보자의 벽보·공보 제출이 의무는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함에 대해서도 “없이 해도 된다”는 답변.
‘쓰레기를 원치 않으면 안 만들면 된다’는 것인데, 이는 곧 ‘당선을 포기하면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선거법이 허용하는 후보자 선거운동방식은 △인쇄물·시설물 이용 △공개장소 연설·대담 △방송연설·언론 광고 등이다. 광고비가 매체에 따라 최소 수백만 원에서 1억 원에 달하는 만큼 세 번째 방식을 활용할 수 있는 후보는 많지 않다. 더욱이 전국단위 선거가 아닌 지역 선거 후보들에게 이는 효과적인 방식이 아니다. 결국 첫 번째 방식이 승패를 가르게 되고, '대량살포식' 홍보문화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인프라가 확산된 만큼 고루한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예를 들어 선거 공보물도 수도·전기요금 고지서처럼 인터넷으로 받아볼 수 있도록 신청을 받거나, 공보물·현수막 제작 시 재생원단 사용을 의무화하는 식이다. 현수막을 안 보고 지나치는 시민이 많으니 디지털 홍보방식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법을 바꿀 수 있는 국회의원들, 즉 잠재 후보자들의 무관심 속에 변화는 더디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선거 쓰레기 문제가 20여 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국회는 되레 2018년 선거법을 개정해 현수막 게시 매수를 읍·면·동 수 1배에서 2배로 늘렸다”고 꼬집었다.
2022년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재·보궐선거가 모두 있는 해다. 김미화 자원순환연대 이사장은 "내년에라도 선거 쓰레기가 남발되지 않으려면 거대 정당이 먼저 제로웨이스트 선거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홍보수단도 많고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큰 정당일수록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더 쉽다는 것이다.
최 전 후보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는 "여럿이 모일수록 친환경 용품 제작 비용도 절감되고 제로웨이스트 노력도 더 알려질 수 있다"며 "보다 많은 후보들이 함께할수록 '쓰레기 없는 정치'는 더욱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