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배운 영어건만 외국인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 걸까. 영어전공자, 토익만점자도 완벽한 어순과 단어를 찾아내느라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현실. 여전히 대다수 한국인에게 영어 잘하는 법은 멀기만 하다. 이번 생에 영어 잘하기는 정녕 틀린 걸까?
사회언어학자인 채서영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신간 '영어는 대체 왜? 그런가요'(사회평론)는 이런 우리들에게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고 인정하고 시작한다. 우리에게 영어는 모국어도, 인도나 필리핀처럼 공용어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영어 잘하는 뾰족한 비법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대신 일단 언어 그 자체로서 영어를 이해해보자고 권한다.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막연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런 다음 마냥 외우기만 했던 발음과 문법, 어휘를 ‘영어란 대체 왜 그런지’ 질문에 따라 배경과 작동 원리를 헤집어 나간다. 'I'm lovin' it' 'I'm missing you'처럼 진행형을 못쓴다고 배웠던 동사가 요즘 광고와 노래 가사에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며 동사와 시제를 다루는 식이다. '무작정 듣기보다는 70% 이상 이해하는 수준이 적당하다', '명사보다 동사를 먼저 고르는 훈련을 하라' 등 유용한 학습 팁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동물원(zoo)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었는데 상대방은 동물원을 유대인(Jew)으로 알아들어 무척 당황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오해를 낳기 쉬운 요소에는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언어학자답게 저자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정답이라고 여겨왔던 ‘표준영어'에 대한 환상을 뒤흔든다. 저자는 "오늘날 영어는 전 지구적 의사소통을 위한 공용어 즉,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일 뿐"이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천된 전 세계에 걸친 방언"임을 강조하며 ‘완벽한 표준영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동시에 저자는 다양한 영어의 정형화된 표현은 무의식중에 편견을 강화할 수 있음을 경계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로열패밀리 출신 스카는 영국식 영어를 쓰지만, 하이에나 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일상어와 히스패닉 영어를 쓴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언제 어디서 영어를 쓰든 국제 통용어를 쓴다는 당당한 태도를 가지라고. 영어의 '표준'이나 '정답'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언어 그 자체로 접근하라고. 미국식 관용구나 영국 상류층 발음을 모른다고 움츠리지 말고 자신있게 쓰라고. 당신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