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해협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감돈 적이 있었다. 실용 외교로 '하나의 중국' 이미지를 깨 가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재선을 막기 위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발단이었다. 중국은 1995년 6월 리덩후이의 미국 방문을 막기 위해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의 국민에게 비자 발급은 옳지 않다"고 미국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미 의회가 들고 일어나 방문 허용 결의안을 채택하는 바람에 결국 방미는 성사됐다.
□ 그러나 이를 두고 보지 못한 장쩌민 주석은 인민해방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7월부터 대만을 향해 둥펑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했고 대만과 마주 보는 푸젠(福建)성으로 10여만 병력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대만 상륙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며 총통 선거 직전까지 이어진 이 군사 위협을 미국이 보고만 있지 않았다. 태평양함대의 항모 인디펜던스, 이지스함 벙커힐은 물론이고 페르시아만에 나가 있던 핵항모 니미츠까지 대만 인근으로 집결시켰다.
□ 위기는 미중 양국의 대화로 무마됐지만, 그 직후 총통 선거는 중국의 계산과는 정반대로 리덩후이의 압승으로 끝났다. 리덩후이는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당이었다. 하지만 외교적 행보로나 이후 총통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바라는 민진당을 지원한 것으로 보나 '대만 독립의 뿌리'였다. 1992년 합의대로 대만과 중국은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에 공감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통일의 가능성은 멀어져가는 게 현실이다.
□ 문제는 국력이 커진 중국이 '핵심적 이익'인 대만을 무력으로라도 통일하려는 충동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들이 "6년 안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대만 침공이)일어날 수 있다"고 경계하는 이유다. 남서쪽 낙도에서 대만과 10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중국과 센카쿠 영유권 분쟁까지 겪는 일본에서는 이미 전쟁 시나리오가 입에 오르내린다. 대만의 위기가 동아시아 정세에 파란을 몰고 올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