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입법을 당부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처리를 약속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의 3월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국민의힘이 "꼼꼼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민주당의 의지도 그다지 크진 않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31일 오후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심사했으나, 여야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모든 공직자의 사익 추구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직무상 비밀을 이용한 재산상 이익 취득 금지 △부정 취득 이익 몰수 및 추징 등을 제도화하는 것이 골자다.
소위 합의 결렬은 예견된 일이었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0일 TV 토론에서 "야당의 이해충돌방지법 반대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과 관련 찜찜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발언한 게 발단이 됐다.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이 반대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여당 후보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반발했다.
31일 열린 소위도 속개와 정회를 반복하며 진통을 거듭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해충돌 방지법이 있었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발언한 게 다시 문제가 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행정부가 법 제정을 압박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공방을 벌이느라 법안의 핵심 쟁점인 '법 적용 대상 범위'에 대해선 심도 있는 논의를 하지도 못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지난 8년간 국회에서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국회의원들의 사익 추구 행위가 여론의 질타를 받을 때만 잠시 입법 의지를 보이다가, 여론이 잦아들면 방치하곤 했다. LH 사태로 분노한 민심을 진화하기 위해 최근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민주당이 연이어 입법 강행 의사를 보이지만, 4·7 재·보궐선거가 일주일가량 남았다는 점에서 '선거용 입법 제스처'란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정무위 법안심사2소위 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와 관계없이 입법 심사를 깐깐히 하자는 것"이라며 조만간 소위를 추가로 열어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가 끝난 뒤 여야가 입법에 다시 액셀을 밟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