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시 역대급 매도' 주인공,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은 누구?

입력
2021.03.29 20:00
'타이거펀드' 출신으로 '새끼 호랑이' 별칭 붙어
실제 자산 5배 이상 끌어모아 투자했다 '마진 콜'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매도의 발단이 된 인물로 헤지펀드 투자자 빌 황(Bill Hwang·한국명 황성국)이 지목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 언론에서 묘사하는 빌 황은 2000년대까지 화제를 뿌렸던 헤지펀드 '타이거 매니지먼트' 출신으로, 과감한 투자로 큰 수익을 내왔지만, 2012년 내부자 거래 혐의로 홍콩에서 거래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30일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빌 황은 최근 월가에서 국제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노무라와 크레디트스위스 등의 창구를 통해 진행된 최소 300억 달러(약 33조 9,000억 원) 규모의 블록딜(대량 매매)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현재 노무라와 크레디트스위스는 주주들에게 여전히 청산할 자산이 남아 있으며 "상당한 손실을 겪을 것"이라고 고지한 상태다. 반면 골드만삭스와 도이체방크는 빌 황의 블록딜과 관련한 손실 위험에서 먼저 탈출했다고 알렸다.

시장에 정통한 투자자들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상황은 빌 황이 운영하는 가족재단인 뉴욕 소재 '아케고스(Archegos) 캐피털매니지먼트'가 대규모 자산을 청산하면서 발생했다.

이런 대규모 매도가 이뤄진 것은 실제 자산의 최대 5배에 이르는 투자를 시도했다가 기업 쪽에 악재가 생기고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으면서, 해당 매입분을 청산(마진 콜)해야 했기 때문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시장 참여자들에 따르면 황의 실제 자산 규모는 50억~100억 달러 남짓이지만, 그가 거래한 여러 IB로부터 실제 자산의 5배에 이르는 레버리지를 끌어들인 후, 바이어컴CBS 등 미국 미디어 기업과 바이두 등 중국 정보기술(IT)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은 이날 이어진 대규모 블록딜의 대상이 됐다.

로이터통신은 황의 투자와 관련 "5배 레버리지 자체보다는, 투자 대상이 편중됐고 복잡한 파생상품을 활용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황은 걸어다니는 위험요소였다"면서 "은행들이 수수료에 굶주려 명백한 위험신호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그가 차액거래(CFD)나 총수익스와프(TRS) 등의 기법을 동원해 눈에 띄지 않고 실제 자산 없이도 대규모 매입 포지션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새끼 호랑이' 출신... 여러 IB들도 앞다퉈 돈 내줘

한국계 이민 2세인 빌 황은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카네기멜런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1990년대 초 한국의 현대증권에서 일했던 그는 당대의 유명 헤지펀드인 타이거 매니지먼트에 연락해 자신의 고객으로 삼았고,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면서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운영한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도장을 받았다.

로버트슨은 2006년 인터뷰에서 그를 "최고의 세일즈맨"이라며 "당시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던 한국에 우리를 소개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월가에 입성한 빌 황은 아시아 투자 전문인 타이거아시아펀드를 운용했으며, 로버트슨 은퇴 후에도 '새끼 호랑이(Tiger Cub)'라는 별칭과 함께 활동해 왔다. 그러나 홍콩 증시에서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거래한 사실이 포착돼, 2012년 유죄 판결을 받고 2014년부터 4년간 거래가 금지됐다.

이후 그는 가족 회사인 아케고스를 설립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지금까지 연간 16%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높은 수익 덕택인지, 한때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골드만삭스 등도 결국 그에게 돈을 내줬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 전술의 약점이 드러나면서 여러 IB들이 줄줄이 끌려 들어가는 상황이 됐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빌 황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아케고스의 홈페이지는 닫힌 상태"라고 전했다. 황은 평소에도 자신의 투자 내역 등을 공개하는 투자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이용해 '오디오 성경' 사업을 하고 국내외 언론에서 이를 적극 홍보한 바 있다.

일부에선 이번 '마진 콜' 사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부풀어 오른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전조가 아니냐는 관측도 일고 있다.

하지만 26일 당일에도 미국 나스닥 등은 전반적 주가 하락을 저점 매수 기회로 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오히려 상승 마감했다. 빌 황의 투자 전모가 언론에 드러난 뒤 처음으로 시장이 열린 29일에도 투자 대상이 된 종목과 크레디트스위스, 노무라 등 은행주를 제외하고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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