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민주당 지도부가 문재인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2018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21대 총선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당시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표를 달라’며 이른바 ‘문재인 마케팅’으로 선거를 치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이 누적돼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30%대로 하락하자, 민주당이 선거 현장에서 문 대통령의 이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국 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의 필승 카드는 '문재인 마케팅'이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ㆍ5월 26일)과 북미 정상회담(6월 12일)으로 한반도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서 선거 직전 대통령 지지율은 70%를 넘겼다. 당시 유세장마다 '문재인' 이름 석 자가 울려 퍼졌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유세장에서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 주셔서 문재인 정부를 성공시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완전한 승리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날개를 달겠다”고 했다.
마케팅은 통했다.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 선거 17곳 중 14곳(82.4%)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7차례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 때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를 극복하려면 국회가 안정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선거 전 발표한 1분 분량의 TV 광고 영상은 문 대통령의 사진ㆍ영상으로 도배됐고, 민주당 지역구 후보들은 선거사무소 건물에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을 내걸었다.
'문재인 매직'은 어김없이 통했다. 민주당은 국회 의석 300석 중 180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여권 관계자는 29일 “당이 이긴 게 아니라 지지율 50%대 중반의 대통령이 이긴 선거였다”고 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문심(文心·문 대통령의 마음) 마케팅’이 사라졌다. 지난 8일부터 29일까지 8차례 열린 민주당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정부’ 등을 언급한 건 두 차례뿐이었다. 그것도 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관련 의혹 등을 겨냥한 야당의 공세를 반박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올해 초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적극적인 친문재인 행보를 펼쳤던 박영선 후보도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로 노선을 바꿨다. 박 후보는 지난 28일 “서울 강남 재개발ㆍ재건축은 공공주도만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택 공급은 공공이 주도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원칙과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전략 변화는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직결돼 있다. 한국갤럽이 23~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지지율)은 34%로 집계됐다.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차기 권력이 부상하는 대선은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만, 지방선거는 다르다”며 “절대 변수는 아니지만, ‘대통령 지지율 40% 미만·정권 임기 3년 차 이후’ 조건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여당이 대체로 불리하다”고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집권 초에는 여당 ‘프리미엄’이 붙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정권 심판 기류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실제 1995년 이후 역대 7차례 지방선거를 분석한 결과, 이런 경향성이 확인됐다. 김대중 정부 1년 차에 치러진 1998년 지방선거, 문재인 정부 2년 차에 열린 2018년 지방선거에선 모두 여당이 압승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 5년 차에 진입해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2002년 지방선거에선 여당이 참패했다. 집권 4년 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였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16곳 중 1곳만 건졌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치러진 2010년 지방선거에선 정권 견제 심리가 커지며 여당인 한나라당이 6석, 민주당이 7석을 차지했다.
이 같은 공식의 예외는 2014년 지방선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2년 차였고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후반에 달했지만, 광역단체장 17명 중 9명을 야당이 차지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세월호 참사 직후이긴 했지만, 세월호 이슈가 민심에 고루 반영될 만큼 시간이 흐르지 않아 결정적 변수가 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2014년 선거는 대체로 일을 못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심판받은 선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