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늙어간다

입력
2021.03.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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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나무심기 좋은 이맘때, 근처의 나무시장에 들러 구경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나무가 잘 팔리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나무를 사는 사람들의 표정도 구경한다. 나무시장에서 살 나무를 고르고 또 흥정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행복해 보인다. 지금은 조그만 묘목이지만 정성을 다해 심고 가꾸면 먼 훗날 큰 나무가 되리라는 희망이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다. 그래서인지 나무시장은 여느 시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웃음꽃이 피어나고 덕담과 농담이 오간다.

내가 산림청에 재직할 때 주관한 여러 행사가 있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행사는 '나무 나누어 주기'이다. 이른 봄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몇 시간씩 줄을 서 기다리며 나무를 받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유치원 아이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나무를 받아 들고 정원으로, 산으로, 또 들로 나무를 심으러 가는 모습은 나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그야말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1953년 발표한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소설은 이맘때 읽기 좋은 책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식목일이 다가올 때쯤이면 내 과목을 듣는 대학 새내기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 전체 분량이 4,000단어밖에 되지 않는 이 소설은 1987년 애니메이션으로도 발표되어 아카데미상과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을 받기도 했다.

'엘지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이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에서 나무를 심으며 숲을 가꾸는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부피에의 노력으로 황량했던 계곡이 다시 살아나고 생명과 평화로움이 넘치게 된다. 환경만 변한 것이 아니다. 서로 시기하고 싸우며 살인까지 난무했던 그곳 사람들의 마음도 사랑이 가득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올 4월 5일은 76회를 맞는 식목일이다. 기후온난화로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논란이 몇 년간 계속돼 오고 있다. 하지만 공휴일도 아니고 꼭 식목일날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상징적으로 지켜왔던 기념일 날짜를 바꿀 필요가 있는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무산돼 왔다. 그런데 올해엔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인 3월 21일로 식목일을 옮기자는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고 한다. 식목일이 있는 나라는 약 44개국 정도이지만 만일 우리나라가 식목일을 변경한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식목일을 변경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다. 덧붙여, 몽골과 인도네시아의 식목일은 각각 5월 25일과 11월 28일이다. 오랫동안 이들 국가들과 우리나라는 산림협력을 통해 산림복원을 도와 왔고 그 영향으로 식목일이 제정되었다니 우리나라도 식목일을 수출한 나라가 된 것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범국이다. 민둥산에 가까웠던 우리의 산을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울창하게 만들어 지금은 OECD 국가들의 평균을 넘는 울창함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1970~80년대 심은 나무들도 이젠 노령화되어 경제적 가치는 물론이고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도 저하된다고 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50년 흡수량이 현재보다 70%가 감소한 1,400만 톤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노령화된 숲에 활력을 주어야 할 때이다.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ㆍ전 산림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