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탄도미사일보다 위협 수준이 떨어지는 순항미사일을 택하며 도발 수위를 조절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 정권 교체기와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을 의식한 예상된 수순으로, 향후 미국의 반응에 따라 수위를 점차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24일 군과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1일 오전 평안남도 온천 일대에서 중국 방향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14일 강원도 문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했다. 지난해엔 미국과 일본 방향이었지만 이번에는 중국 쪽을 향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다분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대한 경고나 불만 표시로 해석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에서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인권 문제'를 작심 비판하고, 미중 고위급 회담 직후였기 때문이다. 북한 사업가가 미국에 인도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도 달가울 리 없다. 더욱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당대회에서 '한미훈련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한미훈련 전후로 '말폭탄' 이상의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무력 시위에 나서면서 탄도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을 선택한 데서 북한 측 고민의 흔적이 읽힌다. 순항미사일은 사거리가 짧아 미국 영토에 도달하기 어렵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한미가 이번 도발을 '저강도'로 평가하며 즉각 공개하거나 대응하지 않은 이유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단거리'일 경우 탄도미사일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존재감을 과시하면서도 대화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수위를 조절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압박에 맞선 '북중 밀월'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구두 친서를 교환하며 협력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 중국 입장까지 곤란해져 대북 경제지원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할 경우 중국도 상임이사국으로서 추가 제재 요구를 마냥 방어하기 어려워진다"며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무기를 배치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중국으로서는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발사를 대내외 매체에 공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참관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도발 행위가 아닌 '통상 훈련'이란 인상을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강(强) 대 강(强)·선(善) 대 선(善)’이란 대미원칙을 밝힌 바 있다. 향후 미국의 대응에 맞춰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는 전통적 시나리오가 재현될 공산이 크다. 이에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책임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고 인권 문제 등으로 갈등이 계속 고조되면 북한은 과거에 그래왔듯 단계적으로 도발 수위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