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엔 24일 기준 3,000여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드라마 방영 중지 청원이 올라왔다.
일부 기업은 광고 철회 조처에 나섰다.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계략)'이 심해져 국내 반중 정서가 커진 상황에서, 드라마의 중국색이 부각되고 반대로 조선을 폄하하는 듯한 설정에 시청자 항의가 빗발친 데 따른 것이다.
결국 SBS는 구마사제 일행을 맞이하는 장면 중 중국식 소품 등이 쓰인 문제가 된 장면을 모두 삭제하고, 내용 검수를 위해 내주 예정된 방송을 결방한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 22일 첫 방송된 '조선구마사'에서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 설정은 크게 두 가지다.
①태종(감우성)이 아버지인 태조의 환영을 보고 백성을 무참히 학살하고 ② 조선의 왕족인 충녕대군(장동윤)이 기생집에서 서역에서 온 구마사제(달시 파켓)에 월병과 피단(삭힌 오리알) 등 중국식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다.
악령을 소재로 한 판타지 사극이지만, 실제 역사 속 인물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태조를 환영에 사로잡혀 무참히 살인을 하는 캐릭터로 표현하고, 조선의 왕자가 교황청 사신 자격으로 온 구마사제에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게 지나친 역사 왜곡이란 게 비판의 요지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이 깃든 '생시'와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다. 넷플릭스의 '킹덤'과 시대 배경과 소재가 비슷하다.
'킹덤'과 달리 '조선구마사'에서만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데는 이날까지 방송된 1~2회를 기준으로 굳이 역사 속 실존 인물을 가져와야 할 당위성이 없는데, 무리하게 연출을 한 탓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조선 좀비를 소재로 한 '킹덤'은 조선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인물을 극에 끌어오지 않았고, 좀비가 출연한 배경을 왕권과 신권의 대립 등 정치적 혼란 속에 등장한 산물로 풀어 반감을 지웠다"며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조선 건국 초기 정치적 혼란을 이미 지난 태종 시대에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그 혼란의 배경도 딱히 드러내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시대를 지목해 괴기스런 이야기를 풀어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구마사' 1회에서 충녕대군은 구마사제에 "조선의 귀신도 아닌 서역 악령이 어떻게 조선에 나타난 것이냐"고 묻자 구마 사제는 "그것은 당신의 조부와 당신의 아버지인 이 나라 왕이 더 잘 알 것이다"고 답한다. 조선에 생시 출현 즉 재앙이 벌어진 게 '조상 탓'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작진이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작진은 "예민한 시기에 오해가 될 수 있는 장면으로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극 중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 특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시청자들은 쉬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최근 중국이 김치, 판소리 등을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신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며 "제작진이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과 후에도 논란의 불길이 사그라지지 않자 제작진은 이날 추가 입장을 내 "실존 인물을 차용해 '공포의 현실성'을 전하며 판타지적 상상력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하였으나, 예민한 시기에 큰 혼란을 드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며 "실존 인물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더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준비했어야 마땅한데, 제작진의 부족함으로 시청자분들께 실망을 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 드라마 대본을 쓴 박계옥 작가는 전작인 tvN '철인왕후'에서 역사 속 인물 이름을 극에 활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표현해 네티즌의 뭇매를 맞았다.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작가는 '철인왕후' 종방 후 중국 대형 콘텐츠 제작사와 계약을 맺었다. 작가의 이런 행적 등으로 '조선구마사' 역사 왜곡 논란이 쉬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태종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손에 피를 묻힌 인물이긴 해도 극에선 너무 피 칠갑을 한 채 과하게 그려졌다"며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도 극에선 너무 유약하게 나와 알고 있는 역사와 달라 시청자로 하여금 혼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구마사' 제작진은 중국 자본 유입설에 대해선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해명했다.
방심위엔 '조선구마사' 관련 시청자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오전 기준 접수된 시청자 민원이 3,900여 건"이라며 "이중 상당수가 역사 왜곡 이슈"라고 밝혔다. 안마의자 업체인 '코지마'는 이날 홈페이지에 "'조선구마사'에 대한 모든 제작 지원 및 광고를 철회했다"고 공지했다. 역사 왜곡 논란으로 기업이 제작 지원을 중도에 철회하기는 이례적이다.
최근 '빈센조'에서 극 중 빈센조(송중기)가 중국 기업의 간접광고(PPL)용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나와 비판을 받았다. '조선구마사'에서 중국식 소품으로 또 논란을 빚자 드라마 속 중국색에 대한 시청자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공희정 평론가는 "중국 드라마에 우리나라 기업 상품이 PPL로 들어갈수도 있고, PPL을 통한 콘텐츠 수출이란 측면에서 무조건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하지만 그 상품 선택과 노출엔 역사 왜곡 문제가 있는지를 좀 더 신중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