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맨' 된 오세훈, '정권심판론'으로 보수 잡고 중도로 넓힌다

입력
2021.03.24 04:30
4면


“지난 10년을 무거운 심정으로 살았다.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서울시민 여러분께 진 마음의 빚을 일로써 갚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 왔다.”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 본선 링에 오른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됐다고 기뻐했다. 2011년 재선 서울시장이었던 그는 서울시 초중고교 무상급식 반대에 직을 걸었다 허무하게 물러났다. 이후 10년은 패배의 연속이었다. 총선에서 두 번 내리 낙선했고, 당 대표 경선에서도 떨어졌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불안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나경원 국민의힘 예비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연달아 제치면서 '왕년의 오세훈'으로 돌아갔다. 보수 야권 단일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오 후보는 지난 10년의 좌절이 떠오른 듯 잠시 울먹였다. 극적으로 부활한 그는 단박에 보수의 구심이 됐다. 보수의 미래가 그의 본선 승리 여부에 달렸다.

화려했던 한때...대권 눈앞에 둔 45세 서울시장

오 후보 정치 인생은 빛과 그림자가 명확하다. '스타 변호사' 타이틀을 달고 정치에 입문한 건 39세 때였다. 이후 한동안 탄탄대로였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아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되자마자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휩쓴 17대 총선 불출마했지만, 보수 진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여당 후보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꺾고 40대 서울시장이 됐다. 2010년엔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누르고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대권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서울시장 중도 퇴진 이후 선거 패배 '수렁'


오 후보는 1년 만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1년 민주당이 다수였던 서울시의회가 보편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찬반 주민 투표를 강행했다.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되면서 자진 사퇴했다. 두 달 뒤 서울시장 보선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오 후보는 '10년간 서울을 적진에 내준 패장'이 됐다.

재기에 나섰지만 순탄치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냈으나, 정세균 국무총리에 패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에선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밀렸고, 지난해 21대 총선에선 보수 험지인 서울 광진을에 출마하는 승부를 걸었다가 정치 신인인 고민정 민주당 의원에게 졌다. 오 후보의 재기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3선 서울시장으로 서울시장 집무실에 다시 발을 들인다면, 오 후보의 '완전한 재기'가 이뤄질 것이다.


‘정권심판론’ 불 붙이고 중도에 '구애'


박 후보와의 승부는 ‘마음의 빚’보다 더 중차대한 ‘정권 탈환’이 걸린 싸움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전선이 명확해진 만큼, 오 후보는 ‘정권 심판론’에 전부를 걸기로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영선 후보보다 서울시정을 잘 안다는 점도 부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박원순 전 시장의 부동산 정책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태세도 갖췄다.

전통 지지층인 보수의 강한 결집을 이루는 동시에 문재인 정권에서 이탈 중인 중도 표심 잡기에도 나선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수가 제대로 된 후보를 내면 결집 효과가 상당하다는 게 증명됐다"며 "이제는 오 후보 한 명만을 위해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 후보는 이날 오후 안 대표와 직접 통화하고 안 대표에게 공동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중도·무당층의 안 대표 지지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안 대표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선거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실상 지휘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24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 후보 지원에 나선다.

김현빈 기자
박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