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입력
2021.03.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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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이다. 시에서 말하듯이 이름이 불리기 전의 ‘꽃’과 이름이 불린 후의 ‘꽃’은 다른 존재이다. 이름이 불렸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이름 짓기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적 행위이다. ‘꽃’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 현상의 본질에 부합하는 이름 짓기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말이 있다. 고교나 대학 입시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실시한다. 사회적 소외 계층이나 경제적 약자를 제도적으로 배려함으로써 기회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 통합을 이룬다는 취지이다. ‘시각장애인 점자 배려 점포’도 있다. 시각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점의 주요 시설과 제품에 점자 표기를 도입한 점포를 가리킨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고 선한 행위이다. 그런데 두 사례에서 ‘배려’라는 용어가 과연 적절한가 의문이 든다. 제도의 긍정적 취지와는 별개로 ‘배려’는 관계를 위계화하여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혹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을 규정한다. 사회적 약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나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의무이다. ‘배려’라는 말로 사회적 의무를 개개인의 마음 씀씀이에 기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마르틴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성격을 규정하고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명칭과 내용이 부합하는 정확한 이름이 중요한 까닭이다.

남미정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