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 원이라는 이베이코리아 예상 매각가는 매각설이 돌던 시점부터 입찰 절차가 시작된 최근까지 유통업계의 화두다.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됐던 카카오가 막판에 발을 뺀 것도 과도한 매각가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금 ‘5조 원이 적정한가’란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다.
16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이베이코리아의 수익성과 오랜 사업 기간 동안 확보한 충성 고객은 분명 탐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공간을 빌려주고 판매자와 소비자 연결 기능만 제공하는 오픈마켓 방식을 고수해 왔다는 점이 차세대 전자상거래(e커머스) 플랫폼 전환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번 이베이코리아 인수 예비입찰에는 e커머스 양강인 네이버와 쿠팡은 물론, 카카오도 불참했다. 쿠팡의 성공적인 뉴욕증시 상장을 계기로 이베이에 대한 우호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해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던 카카오마저 방향을 튼 건 인수비용 대비 미래 가치에 확신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베이코리아는 한국 시장에 2000년 진출한 오픈마켓이다. 가격비교 중심의 입점 및 광고 수수료를 수익모델로 하는 전통적인 오픈마켓은 ‘목적형 구매’에 특화된 서비스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살 물건이 분명한 사람이 접속해 최저가를 찾는 창구라는 뜻이다.
반면 데이터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보기술(IT) 플랫폼으로 출발한 e커머스 기업들은 ‘발견형 쇼핑’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용자가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구경하며 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인공지능(AI) 기반 취향 분석, 맞춤형 큐레이션 기술에 집중하는 이유다.
이 같은 지향점은 최근 카카오 행보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카카오톡은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하단의 ‘친구’ ‘채팅’ ‘샵(#)’에 이은 네 번째 탭 자리에 장바구니 아이콘의 ‘쇼핑’을 집어넣었다. 기존에는 ‘더보기’나 샵 탭에 들어간 뒤 ‘쇼핑하기’에 접속해야 했던 단계를 확 줄여 접근성을 높였다.
위치뿐 아니라 화면 디자인도 변화를 줬다. ‘오늘의 OO’로 쇼핑 테마를 카카오가 제시한다. 제품 검색 및 나열 형식이 아니라 특정 주제 아래 살 만한 상품을 카드 뉴스처럼 안내한다. 상단에 있는 라이브커머스 메뉴 ‘쇼핑라이브’는 방송이 시작되면 제일 앞쪽에 자동 노출된다. 콘텐츠를 활용한 소통 기반의 쇼핑을 강조하는 디자인이다.
네이버도 쇼핑 화면에 트렌드 기반 추천과 쇼핑라이브가 가장 먼저 보이도록 배치했다. 쿠팡은 아직까진 목적형 구매와 생필품 중심의 반복형 구매를 겨냥하고 있지만 최근 영상과 상품 주문 기능을 결합한 ‘쿠팡라이브’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오픈마켓에만 치중한 모델은 가격 경쟁 기반이라 수익성에 한계가 있는 데다, 라이브커머스 등 신사업에 들어갈 향후 투자금도 만만치 않다. 이베이코리아 영업이익률은 수년째 5% 안팎에 멈춰있다. 이진협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e커머스 시장이 가격 중심에서 편의성도 중요한 시장으로 변모해 오픈마켓 소비자가 이탈하기 시작하자 최저가 전략을 펼쳤지만 손익 악화만 나타났다”며 “이에 프로모션을 줄이고 성장보단 수익성 중심 전략으로 선회하며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순수 오픈마켓의 경쟁력에 주목한 기업들에는 수조 원을 쓰고 살 매물인가에 의구심이 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통 컨설팅 업체를 이끄는 박성의 진짜유통연구소 소장은 “5조 원 가치는 거래액이 압도적일 때 얘기”라며 “이베이코리아 실적은 G마켓·옥션·G9 3개를 다 합친 숫자인데 이마저도 네이버, 쿠팡 단독 서비스에 못 미치고 국내 e커머스 평균 신장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