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사건 처리와 관련해 ‘검사 기소권 관할’ 문제를 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이 충돌을 빚고 있는 가운데, 김진욱 공수처장이 꺼내든 ‘재량이첩’ 개념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당장 법조계에선 ‘생소한 것을 넘어, 형사사법체계에도 맞지 않는 개념으로 생뚱맞다’는 반응이 나온다. 게다가 기존 법 체계엔 없는 낯선 개념을 적용하려면 최소한 관계기관들과 사전 협의라도 거쳤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법원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며 책임을 미룬 김 처장의 태도가 무책임하다는 비판마저 잇따르고 있다.
김 처장은 지난 17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법 24조 3항(이첩 조항)은 공수처장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경우 이첩할 수 있는 재량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공수처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현직 검사 사건을 12일 검찰로 재이첩하며 ‘수사 완료 후 공소제기 판단을 위해 사건을 다시 송치하라’고 요구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해괴망측한 논리’라고 반박했고, 김 처장은 전날 국회에서 “검찰엔 수사권만 이첩하고, 공소권 행사를 유보한 재량이첩”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법상 이첩의 ‘형태’나 ‘범위’는 공수처장이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처음 들어본 개념’이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정웅석 형사소송법학회장은 “이첩은 사건을 다른 기관에 넘긴다는 의미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며 “수사권과 공소권을 쪼개고, 어느 한 권한만 이첩할 재량이 있다는 건 김 처장만의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도 “검사로도, 변호사로도 수사 실무를 해 봤지만 ‘재량이첩’이란 용어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량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 검찰청 한 간부는 “이첩에 대한 재량이란 ‘이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것일 뿐, 이첩과 동시에 다른 기관 권한을 제약하는 재량은 국내 형사사법체계에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수처가 처리할 사건을 검찰에 이첩했다는 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넘겼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를 표했다.
물론 김 처장도 이를 의식한 듯 “기존 법 체계엔 이런 조항이 없다. 아직 선례도 없어 학자들 간 논란이 될 것”이라고는 했다. 문제는 논쟁을 예상하고도 관계기관 협의 없이 불쑥 ‘재량이첩’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한 사건으로 얽힐 땐 합리적 조율이 필요하다”며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생소한 개념을 꺼내고 홀로 ‘적용 가능’ 주장을 펴는 건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더구나 “(검찰의 기소 강행 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는 김 처장 발언에 대한 시선도 호의적이지 않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관계기관들 간 논의를 건너뛰고, 법원에 바로 판단을 넘긴 건 독립된 수사기관의 장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라며 “검ㆍ경ㆍ공수처 협의체도 예정돼 있는데 이런 통로를 활용하지 않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김 처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부적절 만남’ 논란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 지검장은 자신의 변호인과 함께 지난 7일 김 처장,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65분가량 면담을 가졌다. 김 처장은 이날 “공수처는 인권친화적 기구라, 이 지검장의 면담 요청을 수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지검장 변호인은 “면담 신청은 이 지검장 본인이 한 게 아니다. 변호인의 면담 신청에 공수처가 ‘그럼 당사자와 같이 나오라’고 요구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면담이 이뤄진 경위에 대한 양측 설명이 엇갈리면서 새로운 불씨가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