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학번 후배는 우리처럼 막막한 신입생 되지 않게 도와야죠"

입력
2021.03.12 13:00
①코로나19 신입생 거쳐 첫 후배 맞은 20학번

편집자주

두 번째 '코로나19 신입생'를 맞이한 대학가는 지난해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강의와 시험 등 학사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반면 올해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오티)이 비대면으로 진행됐고, 학생과 교수들도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생들에겐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다행히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뉴노멀'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학년(21학번), 2학년(20학번), 3학년(19학번)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서울 모 사립대 20학번인 오민석씨는 얼마 전 21학번 후배들을 직접 만났다. '비정모(비정기모임)'라고 불리는 온라인 만남에서 몇몇 후배들과 얼굴을 먼저 익혔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집합금지 지침을 지키기 위해 20학번 선배 둘과 21학번 후배 둘까지, 총 네명이 모였다.

코로나19 이전 대학생들은 주로 학교나 학교 주변에서 모였지만 이들에게 학교는 낯선 곳이다. 대신 모두에게 익숙한 강남역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였지만 이야기 주제는 대부분 비대면 수업에 관한 것이었다. 오씨는 "그래도 만나니까 친해진 것 같다"며 "거의 얼굴 볼 일 없었던 동기와도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학교 생활이나 축제는 할 얘기가 없었다. 신입생 후배가 너무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자신이 참여해보지 못한 행사를 묻지만 "모른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2학년이지만 오씨 자신조차 아직 캠퍼스 지리를 잘 모른다. 지난해 1년 내내 수업이 전면 비대면으로 진행돼 학교는 계산기를 받으러 잠깐 들른 것이 전부다. 오씨는 신입생 시절의 대학 생활에 대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게임하고… 집에만 있었다"고 회상했다.

코로나19로 대면 만남은 제한됐지만, 대학생들의 연결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올해 2학년이 된 '코로나 학번' 대학생들은 지난 1년 동안 여러 노하우를 쌓아왔다.

온라인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Zoom)을 이용해 '화면으로' 만나는가 하면, 오티와 새터(새내기 배움터) 등의 행사를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방역 지침을 지키며 소규모로 만나 온라인 강의를 같이 듣기도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20학번 문모씨는 후배와 멘토링에 참여해 21학번들을 돕고 있다. 문씨의 단과대는 '선후배 멘토 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학교 생활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20학번은 멘토와 멘티 중 하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2학년이면 당연히 멘토를 하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신입생 시절을 보낸 터라 '사실상 1학년'인 20학번을 위한 학교 측 배려다.

문씨는 21학번 후배 두 명의 멘토가 됐다. 후배들에게 수강 신청, 동아리 등 학교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중요한 역할이다.

충북의 한 대학에 다니는 남진우씨의 과 학생회는 최근 유행한 MBTI(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를 기반으로 선후배끼리 짝을 지어줬다. 서로 성향이 맞는 이들끼리 조금더 쉽게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쉽게도 실제 만나지는 못하지만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이용해 소통한다.

이처럼 20학번들이 신입생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신입생 시절을) 우리처럼 보내지 않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 학번'인 20학번들은 지난 1년간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다. 작년 초 갑작스럽게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바람에 새터와 오티 등 행사가 전면 취소되고 수업도 정상적으로 들을 수 없었다. 문씨는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니라는 게 아쉽지만 후배들이 더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선배가 연기도 하고 직접 포장한 선물 보내줘


지난해에는 오티와 새터가 비대면 방식으로 대체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북대 공대는 유튜브 라이브로 1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오티를 진행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오티에 학교 생활과 학과에 대한 안내가 담겼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오티가 지루해지지 않게 중간중간 선배들이 깜짝 등장했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 빌런(악당)들'을 주제로 수업 중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연기했다. 또 'SNS 팔로 이벤트', '학과 선배 소개' 등의 내용이 이어졌다.

경희대 골프산업학과에 다니는 2학년 정재우씨는 신입생들에게 골프공과 볼타월 등 입학 선물을 보냈다. 마찬가지로 비대면으로 진행된 오티에서는 '먹방'을 선보였다. 학교 주변 맛집을 몇 곳 정한 뒤 직접 찾아가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밖에도 퀴즈를 진행해 신입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준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학번들은 정작 자신들이 신입생이었던 지난해 오티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례 없는 상황이었던 것. 정씨와 친구들은 머리를 맞대며 "0부터 시작하는 느낌으로" 오티를 준비했다.


고려대 정경대는 신입생들에게 '새터키트'를 보내줬다. 신입생들을 위한 입학 선물인 '새터키트'에는 대학 생활에 대한 안내가 담긴 자료집, 투명 포토카드, 엘홀더, 떡메모지와 같은 물품이 포함됐다.

이 단과대 신입생은 약 340명으로 총 400여 개의 물품이 준비됐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지침 때문에 학생회 인원들이 4명씩 돌아가면서 400개를 손수 포장하고 배송했다. 정경대 학생회장인 김규진씨는 "힘들었지만 후배들을 생각하니 뿌듯했다"고 말했다.


소통의 연결고리 '싸강팟'으로 똘똘 뭉쳤다


코로나19가 만든 '언택트' 대학 생활에서도 서로와 연결되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싸강팟(사이버 강의를 듣는 무리)'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다른 학생들과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듣는 것이다.

서울 모 사립대 재학생 김가윤 씨는 지난 학기 과 동기 8명과 ‘싸강팟’을 만들었다. 함께 모여서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온라인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을 이용해 시험과 과제를 같이 준비했다. 그는 "코로나19 속에서도 랜선 공부를 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싸강팟이 언택트 대학 생활에서 학생들을 연결해 준 소중한 통로가 됐다.

문모씨는 지난해 유일하게 대면으로 진행되는 실험 수업이 있는 날에만 학교를 갔다. 수업이 끝난 후 동기들과 학교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온라인 수업을 함께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지면서 온라인 '싸강팟'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던 것. 물론 확진자가 늘면서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간 기간에는 오프라인 모임은 중단됐다.

온라인 수업을 만나서 듣는 것에 차이점이 있냐는 질문에 문씨는 "집에서 혼자 강의를 들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같이 들으면 효율이 높다"고 답했다. 친구와 같이 들으면 옆사람이 지켜본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집중하게 된다.

문씨는 21학번 신입생들에게 "매일 집에서 강의만 듣기보다는 선배들, 동기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며 "모여서 수업을 듣는 것이 학업에도 도움이 됐다"고 조언했다.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비단 강의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시국에 1년간 대학 생활을 한 20학번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이디어로 그들만의 대학생활을 만들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제한됐지만 학번 동기끼리 그리고 선후배 들과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1학년부터 2학년까지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그들의 이야기가 짠하지만 흐뭇한 이유다.


장윤서 인턴기자
박상준 이슈365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