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이사회 “배터리 사업 경쟁력 현격히 낮추는 협상 조건 수용 불가”

입력
2021.03.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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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확대 감사위원회 개최해 배터리 소송 논의
"절차 대응 미흡해 영업비밀 본질 다퉈보지 못했다"
LG "영업비밀 침해 인정 안 하는 태도, 진정성 결여"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비밀 분쟁 합의금으로 첨예하게 맞선 LG에너지솔루션에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경우에 따라선 미국 사업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11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0년간의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린 최종 결정과 관련해 전날 열렸던 확대 감사위원회에서 "LG측의 요구가 과도하면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감사위원회엔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했다.

무리한 요구 조건 수용 불가… ITC 패소는 미국 사법절차 대응 미흡 때문

이날 감사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측에서 새롭게 제시한 협상 조건과 LG에너지솔루션 측의 반응 등을 포함해 지금까 진행된 양측의 협상 경과를 보고 받았다. 이어 "경쟁사의 요구 조건을 이사회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감사위원회는 또 글로벌 분쟁 경험 부족 등으로 미국 사법 절차에 미흡하게 대처한 회사측 대응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와 함께 이번 일을 계기로 글로벌 소송 대응 체계를 재정비하고, 외부 글로벌 전문가를 선임해 완벽한 법 준수(컴플라이언스) 모니터링 체계 구축도 주문했다.

감사위원회의 이런 주문은 미 ITC 소송에서 패소한 결정적인 원인이 증거 인멸 정황 포착에서 비롯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측에선 그 동안 배터리 내용이 담긴 이메일 등의 삭제는 통상적인 절차였고 고의적인 증거 인멸 행위가 아니였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미국 사법 절차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면 자료를 그대로 보관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영업비밀 침해 판정도 받지 않았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최우석 SK이노베이션 이사회 대표감사위원은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사업을 더욱 확대해 가야 하는 시점에서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글로벌 기준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LG "문제해결 진정성 결여"… 합의는 여전히 평행선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은 '증거 인멸'에 방점을 찍은 SK이노베이션 감사위원회의 조치에 대해 "영업비밀을 통째로 훔쳐간 것이 확실하다고 최종결정이 났음에도, 여전히 영업비밀 침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문제해결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상 수준에 대해서는 "글로벌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연방영업비밀보호법에 근거한 당사의 제안을 가해자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라며 수용 불가를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업계 안팎에선 ITC 최종 결정 이후 SK이노베이션이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지만, 이날 양사의 공방전만 보더라도 간극만 확인한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3조원과 SK이노베이션에서 내놓은 수천억 수준의 입장 차이는 여전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한편 SK이노베이션에서 희망을 걸고 있는 미국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경우엔 지적재산권을 무기로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이 영업비밀 침해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해 자국의 전기차 산업 발전을 근거로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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