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 본격 협상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은 9일 단일화 필요성을 거듭 얘기했지만, 협상 실무자들은 협상 시작 시점 등을 놓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냈다.
이견이 커져 판이 깨지고 두 사람 모두 출마해 선거가 3자 구도가 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에 출마한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와 김문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됐고, 결국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시장이 웃었다. 보수 진영에선 ‘2018년과 이번 선거는 다르다. 단일화가 좌초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왜일까.
2018년 안철수·김문수 후보의 보수·중도 진영 후보 단일화 논의는 처음부터 동력이 크지 않았다. 3선에 도전한 박원순 전 시장이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선거 한달 전인 5월 12일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안 후보(15.2%)와 김 후보(10.5%)의 지지율을 합해도 박 전 시장(53.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화 시너지 효과’가 더해져도 역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안 후보 선거 캠프에서 단일화 협상에 관여한 인사는 9일 “협상을 꼭 성사시키겠다는 양측 의지가 별로 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 지난 5, 6일 실시된 중앙일보·입소스 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24.2%와 26.4%였다. 단일 후보 1명이 지지율을 모두 흡수한다고 가정하면, 박영선 민주당 후보(35.8%)를 앞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같은 조사의 여야 가상 양자 대결에서 오 후보와 안 후보 모두 박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집계됐다. 단일화의 ‘과실’이 상당 부분 보장돼 있는 만큼, 오 후보와 안 후보 모두 단일화를 뿌리치기 어렵다.
2018년에도 후보 단일화 명분은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2년차인 데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같은 대형 이벤트가 민심을 빨아들인 터라 ‘정권을 심판하자’는 야당의 주장은 그다지 먹히지 않았다.
3년 사이 정권을 견제·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보다 커졌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기론, 검찰과의 갈등, 코로나19로 인한 민생 피해 같은 벌점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7일 중앙일보·입소스 조사에서 ‘보궐 선거에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49.9%)이 ‘국정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견(38.1%)을 앞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를 견제해달라는 게 지금 민심”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를 못 하면 국민의힘이 아니라 야권 전체에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안철수 후보는 외나무다리에서 마주보고 서 있다. 오 후보는 재선 서울시장이었던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직을 걸었다 중도사퇴한 뒤 10년을 방황했고, 이번 선거가 사실상 마지막 재기의 기회다. 제1야당 후보 타이틀을 달고도 안 후보에게 밀리거나 단일화에 실패해 본선에서 지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안 후보도 절박하다. 그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뒤 정계를 떠났다 돌아와 ‘차기 대선 대신 서울시장’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은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를 합해 안 후보의 4번째 후보 단일화 시도다. 또다시 단일화 협상에서 ‘철수’하면 치명상을 입게 된다. 오 후보에게 지거나 양보하고 대선을 기약하는 것이 차선책일 수 있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두 후보가 룰의 대략적인 틀에 공감했고, 서로의 입장만 고수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도 “협상은 이해 관계가 달라도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단일화는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