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기계 설계만 30년, 이젠 반도체 장비 도전하고 싶어요"

입력
2021.03.08 19:47
류성진 케디엠테크주식회사 대표



"한번은 양치질을 15분 넘게 했어요. 양치를 하던 중에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스르르 해결되기 시작했거든요. 생각을 마무리하는데 15분이 걸렸던 거죠."

대구 북구 검단동에 자리 잡은 케디엠테크주식회사는 자동화기계 설계 전문가다. 류성진(53)대표는 2009년 창업하기 전까지 자동화기계 전문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말 그대로 설계에 미쳐 살았다. 간혹 조립도 하고 프리젠테이션에도 나섰지만, 주력 분야는 설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20년 가까이 현장에서 설계 전문가로 내공을 쌓은 덕에 매출이 승승장구했다. 첫해 매출 8억에서 창립한 지 7년 만에 연매출 80억을 기록했다. 직원도 18명에 이른다.

어릴 때부터 자동화기계에 파고든 경력 덕분에 어느새 이 분야의 산증인이 되었다. 류 대표에 따르면 제도용지와 샤프로 도면을 그리던 시절엔 부품의 80%가 일본제였다. 독일에서 자동화기계를 수입해서 쓰던 시절에 비하면 발전한 상황이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대부분 국산화했다. 아직도 몇몇 중요 부품은 일본제를 선호하지만, 대부분 한국 기업에 선두를 내줬다. 이 과정에서 설계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류 대표에 따르면 검증된 부품을 제쳐두고 국산 부품을 넣었을 경우 고장이 나면 비난은 오롯이 설계자가 떠안아야 한다. 주문한 기업이 특정 부품을 써달라고 고집할 경우에는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류 대표는 "무턱대고 외국 부품이 좋다고 믿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면서 "한국 제품을 믿어줘야 국산 부품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기를 탄탄히 다진 덕에 창업하던 해부터 해외 주문이 많았다. 중국은 2009년에서 2015년까지 주문이 쏟아졌다. 미국은 2012년에 첫 주문을 받았다. 한국 모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미국에 있는 지사에 납품했다. 자동차문 힌지(경첩부)를 생산하는 자동화기계였다. 인도도 비슷한 시기에 진출했다. 인도에 진출한 현대차 협력업체에 납품했다. 차문 힌지와 트렁크 힌지 등을 생산하는 기계였다.



해외 주문의 비중이 높다 보니 해외 출장이 잦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지만 6달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직원도 있다. 케디엠테크의 성장에는 직원들의 땀과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류 대표는 "유럽 현지인들과 비교할 때 케이엠테크 직원의 장점이 도드라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특징이라도 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인들은 시키는 일 자체는 열심히 하는데, 그 나머지가 잘 안 됩니다. 창의성과 융통성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한국인 사장님들이나 관계자들에게 '일머리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단 일을 시작하면 맵짜게 마무리를 하니까, 그 부분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류 대표에 따르면 작업 기간도 차이가 난다. 한국 기업이 30일만에 끝낼 작업을 유럽인들이 맡으면 보통 50일 걸린다. 현장 상황에 따라 설계를 수정할 때도 유럽 업체는 비용을 언급하는 반면 한국 업체는 융통을 발휘한다. 한국 업체의 인기가 높은 이유다. 류 대표는 "유럽 업체와 계약을 할 때는 계약서가 책처럼 두텁다"면서 "필요한 일이지만, 아무리 계약이 꼼꼼해도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이 벌어지는 만큼 융통과 창의성은 필수"라고 말했다.

나름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목표가 남았다. 류 대표는 "새로운 특허를 내서 특화된 기계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나중엔 반도체 장비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아직도 '무조건 일본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업체 사장님들이 많습니다.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우리 부품 및 장비 기업들의 노하우와 실력이 만만찮다는 걸 우리 스스로 더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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