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도 끄트머리가 보입니다

입력
2021.03.02 16:30
25면

과천과학관에서 보이는 청계산은 흰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제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눈 덮인 활엽수 가지 위에서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제가 딱 일주일 전에 봤습니다. 혜화동 국립어린이과학관 뒤뜰에서 “곧 봄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안 보이던 게 보이더군요. 바로 겨울눈입니다.

식물이 계절을 대비한다니 참 대단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게 참 어려웠습니다. 왜 이파리가 떨어지는지 궁금했어요. 제가 안 물어봤겠습니까? 어른들의 대답은 고작 “응, 가을이잖아. 겨울이 오기 전엔 이파리가 지는 거야”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살던 여수에는 지천에 널린 게 동백이었습니다. 겨울에 이파리가 안 떨어져요. 매끈한 육질을 자랑합니다. 심지어 붉은 꽃도 피우죠.

‘가을에 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는 이유는 나뭇잎의 기공을 통해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라는 간단한 사실을 제대로 배운 건 대학에서 일반생물학을 배울 때의 일입니다. 요즘은 유치원생도 알고 있습니다. 모두 과학책과 과학관 덕분이죠. 전 억울합니다. 제가 자랄 때는 과학관은커녕 과학책도 없었으니까요.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아니 벌써 봄 아니야?” 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아직 봄은 아닙니다. 유럽인들은 춘분(3월 21일)을 봄의 시작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과학적입니다. 최저기온, 최고기온, 평균기온을 모두 합한 값이 15도 이하인 마지막 날을 봄의 시작일로 정합니다. 예를 들어, 최저기온은 0도, 최고기온이 10도면 평균기온이 5도겠죠. 0+10+5=15입니다. 이런 기온의 마지막 날이 봄의 시작일입니다. 1974~2003년 30년 동안 평균을 내면 우리나라 봄은 3월 14일에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생일이자 스티븐 호킹 박사 기일에 봄이 시작한다니 좀 멋지지 않습니까?

이제 3월이 됐으니 식물들도 슬슬 봄맞이 준비를 시작할까요? 아닙니다. 나무들은 가을에 벌써 봄맞이 준비를 합니다. 뜰에 나가서 목련을 보세요. 꼭 꽃봉오리처럼 생긴 작은 돌기들이 달려 있습니다. 겨울눈입니다. 목련의 겨울눈 껍질에는 가느다란 솜털이 잔뜩 달려 있습니다. 이건 뭘 뜻하는 걸까요? 겨울을 났다는 뜻입니다. 겨울눈은 솜털로 추위를 견뎌내고 수분의 증발을 막았던 것이죠. 바닷바람이 센 바닷가에서 자라는 동백의 겨울눈은 단단한 비늘로 싸여 있습니다.

나무는 가장 풍요로운 계절에 이파리를 떨굽니다. 여름 내내 강한 햇빛으로 열심히 광합성을 하면서 가지를 늘리고 키를 키우고 이파리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양분을 열매에 저장했죠. 열매는 나무가 겨울을 버티기 위해 양분을 저장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에게 주는 겁니다. 열매를 먹고 먼 곳에 똥을 싸서 그곳에서 씨앗이 움트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나무는 다음 해에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름부터 꽃눈과 잎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게 늦가을에야 완성되는 것이지요.

참, 목련에게는 꿀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벌과 나비가 없던 시절인 공룡시대에 등장한 꽃이거든요. 다행히 그때도 바퀴벌레는 있어서 목련이 수분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목련 그늘에서 낮잠 자는 티라노를 상상해 보세요.

개학했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개학도 못 했었죠. 우리는 코로나라는 긴 겨울을 1년 이상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겨울도 끄트머리가 보입니다. 우리도 목련처럼 봄을 맞을 자격이 있습니다. 겨울눈에서 꽃망울을 터뜨려야죠.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