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는 판의 핵심을 정확히 판단하고 읽어내는 것이다. 아무리 프로기사들이라 해도 모든 수를 읽어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 판마다 직관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 온다. 흑1, 3이 놓인 시점. 이 때가 바로 직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장면에서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그동안 누적된 공부와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감이 닫는 곳에 몸을 내던진다.
백4, 6의 행마에 심재익 4단은 흑7로 약점을 공략한다. 안성준 9단 역시 백8, 10을 선수하며 백14까지 위태해 보이게나마 돌을 모두 연결시키는데 성공한다. 다만 백22는 다소 작은 자리. 변화도3 백1로 젖혀 중앙 백을 안정시키며 상변 흑을 압박할 자리였다. 흑4는 회돌이를 방비하기 위한 선수활용. 흑6으로 밀어올 때 백7의 한 칸 뜀이 안정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좋은 행마다. 이때 등장한 흑23 역시 뼈아픈 실착. 스스로 공격의 템포를 한 박자 늦춘 느슨한 수였다. 변화도4처럼 먼저 압박할 곳이었다. 흑1, 3으로 백 대마의 집 형태를 없앤 후 흑5로 우변 안정을 취했어야 했다. 심재익 4단 역시 이내 깨달았는지 얼굴을 살짝 찡그린다. 흑이 템포를 늦추자 백은 하변으로 빠르게 손을 돌린다. 흑25는 한발 늦었지만 어차피 반드시 두어야하는 급소자리. 그러나 우변 흑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이제 백은 두 점을 반드시 살려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쌍방 실수를 한 차례씩 주고받으며 국면은 점점 직관의 영역으로 빨려든다.
정두호 프로 3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