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연행 기술 없으니 역사교과서 괜찮다?"...日정부와 우익단체 뻔뻔한 공방

입력
2021.02.24 16:00
우익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 이미지" 삭제 요구
日 정부 "강제 연행 기술은 없지 않느냐"며 거부
고노 담화 훼손 이후 종군위안부 표현조차 부정
日, 유엔서 위안부 언급에 "합의에 어긋나" 반발


4월 신학기부터 사용되는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종군위안부'(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부분에 대해 우익단체가 "강제연행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라며 삭제를 요구하자, 일본 정부는 강제적인 연행이 있었다고 기술돼 있지 않아 문제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양측 모두 당초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때 위안부 강제연행을 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시한 문건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고노 담화'를 부인한 입장에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나 우익단체 모두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만 확인시켜주는 풍경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 우익단체가 요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야마카와출판 발간)의 ‘종군위안부’ 관련 기술 삭제 권고 민원에 대해 "권고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고 산케이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새역모와 ‘위안부 진실 국민운동’ 등의 단체들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장관 앞으로 이같은 요청서를 제출했다. 요청서에는 “종군위안부는 강제 연행 이미지와 깊이 연관 지어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해당 기술이 일본 정부 견해에 비추어 볼 때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야마카와출판의 역사 교과서에는 ‘전시 체제 하의 식민지·점령지’라는 제목으로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일본에 징용돼 광산, 공장 등에서 가혹한 조건 하에 노동을 강요당했다"라고 기술돼 있다. 또 같은 페이지에는 주석을 달아 “전쟁터에 설치된 '위안시설'에는 조선,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여성이 모집됐다. (이른바 종군위안부)"라고 부연했다.

문부성은 답변서에서 “(해당 교과서에)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적인 연행이 있었다”고 기술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강제 연행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 견해와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위안소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대해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고,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한 적도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것이었다"라고 명시했다.


고노담화를 계기로 1995년 교과서 검정 당시 일본의 전 출판사 교과서에 위안부 기술이 실렸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논란과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2004년부터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이 일제히 사라졌다.

아베 신조 2차 내각도 2014년 검증 작업을 벌여 정부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직접 지시한 사실을 입증할 공식 문건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강제 연행'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다.

2015년 검정 때부터 진보 성향인 마나비샤출판의 역사 교과서에 재등장한 위안부 기술이 지난해 검정을 통과한 야마카와출판의 교과서에도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우익들은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조차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23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밝힌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의 발언에 반발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일본)로서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한 한일 합의에 비춰 (최 차관의) 발언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제네바에서 야마자키 대사가 한국 측에 (이런) 견해를 밝혔고, 이후 (일본 측의) 답변권 행사 때도 적절히 우리나라의 입장을 주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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