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0년 4~5월, 그러니까 대략 11년 전 일이다. 현직 검사들이 건설업자한테서 향응과 금품을 수수했다는 ‘스폰서 검사’ 의혹이 터지면서 검찰을 향한 여론은 극도로 악화했다. 당시 한 선배의 말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검찰에 불려온 피의자가 ‘당신들이 날 처벌할 자격이나 있느냐’라면서 조사 받는 걸 거부하는 일도 있다고 하네. 위험 신호야.”
물론 다소 극단적이고 단편적인 일화다. 하지만 공권력이 국민 신뢰를 잃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주는 데엔 충분해 보인다. 바로 그 무렵, ‘떡검’ ‘떡찰’(뇌물성 떡값을 받는 검찰이라는 의미) 등 유행어도 급속히 퍼졌다. 국가 형벌권 집행 기관의 권위는 실종됐고, 법치주의 근간인 사법 기능도 ‘희화화’하고 말았던 것이다.
옛날 얘기를 꺼낸 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서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여전히 밑바닥을 맴돈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공개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검찰의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65점으로 법원(2.80)이나 경찰(3.09)보다 낮았다. 검찰 간부들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국민 신뢰 회복’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이젠, ‘그나마 검찰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법원의 권위마저 무너지고 있다. 현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 보도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이 100개 이상 늘어서 있다. 법원도 조롱의 대상이 된 현실을 상징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다. 사법부 최고 수장으로서 정치권 동향이나 살피며 ‘법관 탄핵’을 운운하고, 급기야 ‘거짓 해명’까지 내놓았던 김 대법원장 책임이 가장 크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김명수’라는 개인을 넘어, 이번 사태로 드러난 사법부의 어두운 자화상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임성근 부장판사의 ‘몰래 녹음’. 임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과의 일대일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누구도 그런 목적으로 ‘몰래 녹음’을 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유사시 활용할 보험’을 들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그리고 그는 보험을 실제로 썼다. 현직 고위 법관도 이럴진대, 이제 법정에서 누군가 ‘몰래 녹음’을 하더라도, 재판장은 할 말이 없게 됐다. 김 대법원장 발언의 부적절성과는 별개로, 임 부장판사의 그런 행위는 우리 사회가 ‘판사’에게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보수 언론이 종종 인용하는 ‘온라인 판사 익명 게시판’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실명 작성이 원칙인 법원 내부망(코트넷)이 잠잠한 것과는 달리, 그곳에선 김 대법원장을 비판하고 야유하고 조롱하는 익명 글이 넘쳐난다고 한다. 해당 법관들은 왜 익명에 기댈까,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하다. ‘판사도 인사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라는 건데, 사법농단과 재판개입은 바로 그런 생각을 비집고 들어간 덕에 가능했다. 법대에서 추상과도 같은 권위를 내세워 타인을 심판하던 법관들이 정작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선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마치 배설과 같은 원색적 글을 쏟아내는 부조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적어도 나는, 그런 법관들의 판결을 곧이곧대로 믿고 존중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