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겨울 한파 속에 미국 텍사스주 일부 주민이 무려 1,800만원에 달하는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를 받았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는 기본적으로 전력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한파로 텍사스주 내 전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해 전력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웃돌자 전기요금 단가가 급등한 것이다.
다만 이런 사고는 미국 내 다른 주나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경우다. 텍사스주의 특이한 전기요금 체계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22일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 일부 주민은 이달 지불해야 할 전기요금이 전달보다 20배 넘게 뛰었다. 폭스뉴스는 “텍사스주 알링턴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경우, 매달 평균 660달러(73만원)를 내다가 이달에는 1만7,000달러(1,881만원) 청구서를 받았다”며 “텍사스 주민 2만9,000명 정도가 이런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텍사스주는 미국에서도 전력시장 민영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운영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민간 전력 공급회사가 구입하는 도매전력 가격이 소비자의 전기요금 고지서에 실시간 반영되는 구조다. 보통 급격한 요금 변동성을 막기 위해 정부가 ‘캡(상한)’을 정하지만 텍사스주에서는 이게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은 “텍사스 주정부는 실시간 반영되는 전기요금 변동폭 캡을 메가와트(㎿h) 당 9,000달러까지 허용해놓았다”며 “이렇게 막대한 금액을 소비자에게 실시간으로 전가하는 사례는 미국 내 다른 주는 물론, 다른 국가에도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모든 규제를 꺼리는 텍사스 주정부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 텍사스주는 미 연방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 다른 주들과 송배전 등 전력망을 연결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 지역 내 원자력과 풍력 등을 이용해 자체 발전으로 전력을 해결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텍사스주는 남북전쟁 당시부터 미 연방에서 독립하려는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이라며 “다른 주들과 전력망만 연결됐어도 이번 전력공급 부족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전력시장을 민간기업에 전적으로 맡기면서도 규제는 최소화하다 보니 비상사태에 대비한 발전 인프라 확충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텍사스주 내 전력발전소에는 동파를 막는 단열시설조차 구비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텍사스주에서 이런 한파는 지난 90년 동안 발생한 적이 없다”며 “우리나라 한전처럼 공기업이 나서지 않는 이상 어느 민간기업이 여기에 돈을 투자하겠냐”고 말했다.
물론 전력시장 민영화에 따른 큰 폭의 변동요금제 덕에 텍사스주 소비자가 평상시 혜택을 보는 측면도 있다. 텍사스주의 ㎿h 당 평균 전기요금은 평소 50달러(5만5,000원)에 불과하다. 한국은 일반 가정집 요금이 8만8,300원 정도다.
다만 한국은 누진제를 시행하면서도 공기업(한전)이 공급하는 킬로와트(㎾) 당 전기요금 단가가 ‘상수’로 고정돼 있어, 재난 상황에서도 전기요금이 요동치지 않는다. 여기에 한전의 전기요금 조정은 정부 심의를 거쳐야 해 마음대로 인상할 수도 없다.
일각에선 지난달 11일부터 국제유가 등에 따라 전기요금이 변동되는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면서 자칫 이번 텍사스주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유가가 급등해도 분기 당 인상 가능한 전기요금 상한은 ㎾ 당 3원”이라며 “4인 가족 한달 평균 사용량(350㎾)을 감안하면 한달 전기요금 변동폭은 1,000원 정도에 불과해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