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원들은요?" 40시간 만에 극적 생환 선원의 첫마디

입력
2021.02.21 17:00
12면
홍게잡이 거룡호 선원 1명 극적 생존
배 뒤집힐 때 그물에 걸려 어창에 갇혀
에어포켓·선반 덕분 산소공급·체온유지

"우리 선원들은 어떻게 됐나요?"

21일 오전 10시 23분쯤 전복된 배 안에 갇혀 있다가 40시간만에 극적 구조된 류모(55)씨. 그는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고 구조정에 올라 오자마자, 먼저 동료 선원들의 안부를 물었다. "수색 중입니다"는 해경 직원의 답변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날 오후 4시 현재 추가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베트남 선원으로 추정되는 1명은 류씨에 앞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나머지 4명은 실종 상태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 19일 오후 6시 49분쯤 경북 경주시 감포항 앞바다에서 전복된 홍게잡이 어선 거룡호(9.77톤) 선원 류씨가 사고 40시간만인 21일 오전 10시 23분쯤 선체 내부 수색에 나선 해경 잠수사에 의해 구조됐다. 수색 3일째인 이날 오전 8시 11분 첫 잠수를 시작한 지 2시간 만이었다.

발견 당시 류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저체온증 등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돼 이날 오후 의식을 되찾았다.


포항해경은 전복사고 후 3차로 시도한 선체 내부 수색에서 선박 뒷 부분에 있는 어구창고(어창)에서 오전 9시 57분 류씨를 발견했다. 어창은 가로2.5m, 세로 2m, 깊이 1.5m 크기로 어른 3명이 누울 수 있다. 그물이나 통발 등을 보관하는 이 어창은 길이 15.3m, 9.77톤급 홍게잡이 어선치고는 큰 편이었다. 류씨는 창고 안에서도 뒤집힌 선반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해경은 류씨의 호흡과 체온유지를 위한 장비를 갖춘 뒤 4차로 진입, 오전 10시23분쯤 구조에 성공했다. 사고가 난 지 약 40시간 만이었다.

류씨가 무사히 구조된 것은 어선이 갑자기 뒤집히는 바람에 어창에 형성된 에어포켓 덕분으로 보인다. 이 배는 선령 3년의 새 배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돼 에어포켓이 계속 유지됐다. 게다가 류씨는 어창 내부 선반에 앉아 있을 수 있어 차가운 바닷물도 피할 수 있었다.

이성희 포항해양경찰서 구조대장은 "사고해역 수온은 12.6도로, 우리처럼 고도로 훈련된 요원도 2시간 생존율은 50% 정도"라고 말했다. 에어포켓에 숨 쉴 산소가 남았더라도 몸이 물에 잠겼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해경 조사 결과 류씨는 사고 당시 창고에 들어갔다가 그물에 발이 걸려 탈출에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는 수 없이 창고 안 물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한 곳이 선반이었고, 덕분에 극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사고는 지난 19일 오후 6시 49분쯤 경주시 감포항 동쪽 43㎞ 해상에서 풍랑주의보 속에 조업 중이던 거룡호가 갑자기 뒤집히면서 일어났다. 거룡호는 사고 당일 오전 3시쯤 구룡포항을 출항했다. 실종된 선장과 류씨 등 한국인 선원 2명과 중국동포 1명, 베트남선원 3명 등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다.


해경은 지금까지 해경 및 해군함정 22척, 관공선 2척, 항공기 10대, 민간해양구조대 선박 2척을 동원 대대적인 구조에 나섰다. 조명탄을 쏘며 야간수색까지 벌였지만 기상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20일엔 선체 침몰방지장치인 리프트백을 설치했고, 바람이 잦아든 21일 잠수사를 투입한 수색 끝에 류씨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날 다시 파도가 높아지면서 낮 12시 8분부터 선체내부 수색은 잠정 중단하고 부근 해역만 수색하고 있다.

포항= 김정혜 기자
포항= 정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