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들이 탈중국화에 속도를 내며 'K배터리'를 위협하고 있다. 텃밭인 한국과 유럽 시장에서도 K배터리는 'C배터리'(중국산 배터리)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선두 업체인 CATL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선정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3차 물량 배터리 공급사로 낙찰됐다. 현대차그룹이 2023년 이후 출시 예정인 3개 차종에 대한 배터리 공급사를 선정했는데 SK이노베이션이 1종, CATL이 2종을 따낸 것이다. 총 9조원 규모 물량 중 절반 이상을 CATL이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CATL이 국내 시장까지 파고든 것은 가격·성능·생산력 측면에서 K배터리와 견줘 충분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며 "안정적 수급을 위해 배터리 공급사를 다변화해야하는 현대차 입장에서 스펙이 맞지 않는 삼성SDI, 코나EV 등 화재로 안전 이슈가 불거진 LG에너지솔루션의 상황을 감안하면 CATL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초 3차 물량의 핵심으로 꼽혔던 스포츠유틸리티(SUV) 전기차 '아이오닉7'에 탑재될 배터리 선정은 미뤄졌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인도네시아에 건설을 추진 중인 합작법인이 아이오닉7에 탑재할 배터리를 생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C배터리의 영토 확장은 한국 시장을 넘어 유럽을 정조준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생산하는 독일 완성차 업체 다임러 그룹은 지난해 CATL과 배터리 공급은 물론 연구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업계에 따르면 양사는 향후 다임러 그룹에서 생산하는 모든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를 CATL에 우선 발주하고 CATL이 수주를 거부하는 경우에만 다른 배터리 업체를 통해 공급받는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차종별로 배터리 업체를 선정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형태"라며 "말 그대로 CATL이 '수퍼 을'(갑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지닌 을)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자동차 시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막대한 전기차 생산량에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CATL은 지난해 비중국 시장 점유율을 대폭 늘렸다.
배터리 시장조사 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CATL 배터리 사용량은 0.2GWh(기가와트시)로 LG에너지솔루션(12.3GWh), 삼성SDI(4.3GWh), SK이노베이션(2.1GWh)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3GWh로 무려 2,457.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점유율 역시 0.4%에서 6.5%로 껑충 뛰었다.
CATL은 또 상상을 초월하는 생산능력을 갖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CATL이 현재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배터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종합하면 자체 생산과 합작사를 합쳐 2025년엔 486.8GWh, 2030년엔 591.8GWh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2020년 글로벌 시장 전체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이 142.8GWh인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예정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배터리 공급사 입찰 규모는 약 1.4TWh(테라와트시)로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 총 배터리 용량의 10배에 달한다"며 "수주전 결과에 따라 배터리 업체들의 향후 수년간 순위표에 지각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유럽까지 C배터리가 침투한 만큼 K배터리는 신흥 시장이자 중국의 진출이 제한되는 미국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면서 "LG와 SK가 빠른 시일 내에 합의를 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K배터리의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