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소유자에게 명의만 빌려준 명의수탁자가 아파트를 임의로 처분해도 이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명의를 신탁한 행위까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8일 사기·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사기 혐의에는 징역 1년, 횡령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각각 선고한 원심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확정했다.
A씨는 2014년 B씨로부터 부산 수영구 소재 아파트를 명의신탁 받아 보유하고 있다가, 1년 뒤 자신의 채무를 갚기 위해 채권자 측에 아파트를 매도한 혐의(횡령)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의 횡령 혐의와 별도의 사기 혐의까지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A씨가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횡령 혐의엔 무죄를 선고했다. 그 결과, 형량도 징역 1년으로 줄었다.
대법원 역시 A씨의 횡령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횡령죄의 본질은 신임관계에 기초해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다"면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명의신탁 관계라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에 반해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을 뿐, 이를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판결 결과에 따라 대법원은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할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했던 종전 판례를 모두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