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은 높은 고령화율, 낮은 생산성, 소규모 가족농 등의 이유로 다른 산업에 비해 뒷전으로 미뤄져 왔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기후변화, 인간수명 연장 등으로 식량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월 초, 새롭게 부상하는 농업이 미래에는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자, '생명화 시대! 농업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생명자본 정신에 입각해 농업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 시대의 지성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교수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생명자본은 물질이나 산업기술이 아닌 생명과 사랑, 행복을 원동력으로 하는 자본을 말한다. 이 교수는 과거 자본주의에서는 경쟁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생명자본주의 시대엔 감동과 공감이 원천이 된다고 설명한다. 약육강식이나 기생이 아니라 상생이나 공생이 중시되는 시대인 셈이다. 예를 들어 과거엔 나무를 베어내야만 자본이 됐지만, 지금은 나무를 키우기만 해도 훌륭한 관광 자본이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사실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기존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일찌감치 환경운동가 폴 호켄(Paul Hawken)은 '생태학적 측면에서 자연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연자본주의'를 내세웠고, 빌 게이츠는 2008년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제안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바 있다.
기조 강연을 한 이어령 교수는 농업의 미래를 보다 큰 담론 속에서 통찰하면서, 소농 중심의 한국 농업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발생 후 높아진 생명 가치의 흐름 속에서 앞으로 생명자본이 중시될 것이며, 이를 실현하는 수단은 디지로그(DigiLog)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로그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로 기술(tech)과 인간애(humanity)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는 디지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농업을 꼽았는데, 그 바탕은 역설적이게도 미래 자급자족 경제를 목표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위협받는 분야가 농업이라는 데서 출발했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지력(知力) 혁명의 시대, 모든 산업은 지금 대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특성을 모두 지닌 '디지로그' 산업, '농업'이다. 세계 농업은 지금 변곡점에 와 있고, 우리는 이제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어령 교수는 넙치와 참치, 날치 이야기로 변화를 촉구한다. 넙치는 바다 밑에서 다가오는 물고기만 잡아먹고, 참치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한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날치는 완전히 다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땐 지느러미를 날개 삼아 날아오르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바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를 알려면 바다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상상의 하늘로 높이 날아 세상을 조망하고 깊이 통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농업에 지금 필요한 것은 날치처럼 비상하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상상력과 용기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