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15세 이하(U-15) 유소년 축구클럽 지도자가 축구화 등으로 선수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선수들 사이에선 해당 지도자가 수년간 폭언을 일삼은 것은 물론 손찌검까지 해 선수 고막이 파열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근 프로배구 선수들의 학창시절 폭행사건을 비롯해 스포츠계 폭력 논란이 불거지면서, 고질적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경찰과 축구계에 따르면 경찰은 경기지역 축구클럽 감독 A씨가 지난달 진행된 동계훈련 도중 학생들을 폭행했다는 신고를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피해 선수 및 가족을 우선 조사한 뒤 A씨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대한축구협회도 A씨의 폭행 사건에 대한 신고가 접수될 경우 진상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A씨는 지난달 전지훈련 도중 경기장 내 천막으로 선수들을 불러모은 뒤 "연습경기 내용이 성에 차지 않는다"며 뺨을 때렸다. 일부 선수들에게는 얼굴에 침을 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 폭행은 이틀 뒤 선수단 버스에서도 발생했는데, 선수들을 축구화로 때렸다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해당 축구클럽의 행태는 수년간 잇따르고 있는 체육계 폭력 사태와 판박이다. 8개월 전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 감독과 주장 등의 지속된 폭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최근엔 프로배구 이다영·재영(25) 선수가 학창시절 동료 선수를 폭행한 사건으로 파문이 커졌다.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 속에서 감독과 선수 간, 선수와 선수 간 보이지 않는 상하 관계가 왜곡된 폭력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감독 A씨 역시 경기가 만족스럽지 못하단 이유로 선수들을 수시로 때렸다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훈련 중 실수하거나 성적이 부진할 경우 가르침을 명분으로 폭력을 동반하는 식이다. 선수 부모 B씨는 "경기 중 선수가 다치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강이를 차거나 '꼴도 보기 싫다'며 욕하고, '니들이 왜 맞았는지 아냐. XX 같은 니네 부모 탓'이라는 말까지 했다"며 "2년 전엔 뺨을 맞아 고막을 다친 아이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선수 부모 C씨도 "아이들을 때리거나 욕할 때마다 '큰일 난다'고 말했지만, 감독은 '누가 그러더냐'며 듣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그럼에도 수년간 감독직을 유지한 이면엔 스포츠계의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다. 감독이 떠나면 팀이 해체되거나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이 때문에 감독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고, 학생과 학부모의 절박함은 폭력에 눈감을 수밖에 없는 문화를 만든다. 학부모 C씨는 "어떤 부모가 자식이 맞는 걸 좋아하겠느냐"며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면 원치 않는 피해를 보게 돼 참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참다 못한 학부모들이 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해당 축구팀은 최근 새로운 감독을 선임했다. 학부모 B씨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계속 축구하고 싶다고 해서, 팀을 떠나지 않고 다시 의기투합하기로 했다"며 "폭행당한 아이들의 미래까지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협회로 신고가 접수되면 자체 조사한 뒤 사안에 따라 스포츠공정위원회에 회부해 징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보는 A씨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