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규제는 위험요소"… 뉴욕 투자자 향한 쿠팡 조언 두고 '갑론을박'

입력
2021.02.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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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건정성 악화 요인으로 규제 명시
e커머스 옥죄는 규제 입법 잇달아
일각선 "상생 위해 불가피 측면도"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는 196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다. 앞으로의 비전과 성장 계획 등 장밋빛 전망 못지않게 많은 부분을 할애한 내용은 투자자를 위한 유의사항이다.

'위험 요소(RISK FACTORS)' 목차에서 쿠팡은 '우리 영업 중 일부가 한국 법률에 적용을 받는다'고 명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북한과의 정치적 긴장 상태와 더불어 '한국 규제'를 콕 집은 셈이다.

15일 SEC에 제출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일부 사업이 한국 정부의 유통 관련 법안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비용이 더 소요될 수 있고, 재무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의 요구로 주주가치 극대화에 어긋나는 경영상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쇼핑 수요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오프라인에서 전자상거래(e커머스)로 대거 이동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e커머스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쿠팡은 재무건전성을 악화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적시한 것이다.

기존 유통법의 '온라인 버전'으로 불리는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조만간 국회 상임위 상정 및 의결 절차에 들어간다. 플랫폼 업체가 대외비로 관리하는 상품 검색 및 배열 알고리즘을 계약서에 필수 기재토록 하고 분쟁조정 해결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 골목상권과 중소상공인 타격을 고려해 대형마트에 적용하던 영업시간, 취급품목 제한 등을 e커머스까지 확장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상품 대금 지급기한을 30일로 못박고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로켓정산법 등이 줄줄이 추진되고 있다.

업계에선 배송 시스템 고도화 등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데도 단순히 시장 성장세만으로 플랫폼을 '갑'으로 규정하는 건 과도하다고 토로한다. e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온라인쇼핑몰이 워낙 박리다매 구조라 주요 기업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도 않았는데 책임과 추가 장치 등을 요구하면 손익구조 개선에 부정적인 요인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쿠팡은 비대면 쇼핑 폭발로 적자 규모를 대폭 줄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지난해 영업적자 5,257억원을 기록했다. 위메프(-540억원), 11번가(-98억원) 등 선발주자를 비롯해 신세계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도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365억원이다. 롯데 통합몰 롯데온의 연간 손실도 수백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유통업계에서 신규 산업이 등장하면 사업모델에 입점하는 중소상공인, 소비자, 운영사 간 이해충돌과 다양한 갈등이 생겨나기 때문에 일종의 표준이 되는 규율 마련은 필요하다고 본다. 1980년대 국내에 프랜차이즈 산업이 태동하고 가맹사업법이 2002년 제정되기 전까지 관련법 부재로 다양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고, 소비자와 점주의 피해와 분쟁도 잦았다는 경험에서다.

한 프랜차이즈 대기업 관계자는 "초반에는 미국 방식을 토대로 계약을 맺다가 다양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입점 점주가 늘면서 매장 리뉴얼 비용에 대한 본사의 지원 문제, 매장 간 거리 제한 문제 등 예상 못 했던 갈등 요소가 생겨났다"며 "상대적으로 약자인 점주나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때마다 정부에 질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겪다가 가맹사업법으로 기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며 "e커머스도 수수료나 상품 노출 방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생 차원의 규제 현실화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증권신고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쿠팡의 핵심 경영진이 미국 출신이고 기업 운영 방식이 미국식이라 국내 규제에 특히 민감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창업자인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하버드대를 나왔다. 국적은 미국이고 현지에서 창업 경험도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기술책임자(CTO)도 미국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다. 자사주를 활용한 파격적인 경영자 보상, 김 의장만 보유한 보통주(클래스B)에 주당 29배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도 국내에선 낯선 시스템이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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