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하면 한국과 미국, 누가 더 손해일까

입력
2021.02.15 12:00
<11> ‘미군 주둔 75년’ 손익계산서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글로벌 호구가 되지 않겠다”며 툭하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지난 4일 “전세계 미군 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바이든 신행정부의 한마디에 한국이 또 다시 술렁거렸습니다. 재검토 대상, 범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던 탓에 혹여나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인 거지요.

근거 없는 불안감은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12년 만에 빠진 것부터가 불안한 징조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의 쇼’라는 해석에 무게가 더 실렸습니다. 하지만 동맹주의자 조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구석’은 주한미군 규모를 일방적으로 줄일 수 없도록 규정한 미국의 ‘국방수권법(NDAA)’과 “중국 견제가 최우선인 미국이 주한미군을 뺄 가능성은 낮다”라는 이른바 ‘대중국 견제 카드’ 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안전장치는 아닙니다.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축소가 국가 안보에 부합하고, 이를 동맹국(한국)과 협의했다’는 사실만 의회에 증명하면 국방수권법은 아무 제약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꼭 한반도에서만 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주한미군 일부를 빼서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남중국해 인근에 배치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주한미군 축소, 더 나아가 철수까지 고려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주한미군 축소를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그 목적이 무엇이 됐든, 주한미군 주둔의 손익을 계산해 볼 시점이 된 듯합니다. 주한미군은 과연 누굴 위해 있는 것인지, 철저히 따져보자는 겁니다.


베트남전 패배로 줄어든 주한미군, 현재는 2만8500명

미군이 한반도에 처음 주둔한 것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입니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각각 분할 점령했던 때였지요. 당시 7만7,000여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500명만 남겨두고 사실상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소련과 중공군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32만여명을 주둔시켰고 그렇게 주한미군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1960년대 6만여명 수준이었던 미군은 이후 숱한 축소와 철수 논쟁으로 오늘날 2만8,500명에 이르게 됩니다. 1969년 7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무력 개입하지 않겠다”는 ‘닉슨 독트린’을 바탕으로 베트남전 철군 계획을 밝히면서 1971년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6만6,000여명→4만여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베트남전 패배로 해외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을 의식해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 기간 단 한 명도 줄이진 못했지만, 1992년 냉전 종식으로 또 다시 3만6,500명으로 감축됩니다. 이라크전에 돌입한 2004년에는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보병여단 병력을 전쟁에 투입하고 복귀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줄여나갔고, 현재 수준(2만8,500명)이 됐습니다. 미국의 대외 전략이 달라지면서 주한미군 규모도 변해온 셈입니다. 물론 그 변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주한미군, 공짜로 베푸는 시혜 아니다

미국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아무 이득 없이 한반도에 주둔할 리 없습니다. 실제 2차 세계대전으로 패권을 쥔 미국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에 군대를 배치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를 늘려왔습니다.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인접한 우리나라에 주둔하며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것이 대표적이지요.

우리가 공짜로 혜택을 입은 것도 아닙니다. 반대급부로 과거에도 현재도, 미국산 무기를 엄청 사들입니다. 애초 지급할 의무가 없었던 주한미군 주둔을 지원하는 비용인 ‘방위비 분담금’도 1991년부터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은 토지, 건물만 제공하고 주둔비용은 일체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지만, 우리의 경제력 상승에 미국이 변심한 겁니다. 1991년 연 1,000억원으로 시작한 분담금은 현재 1조원이 넘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때 이 금액의 5배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는 “동맹국들이 우리를 벗겨먹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 관점에서는 ‘미국이 우리 등골을 빼먹는’ 격입니다.

물론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현행 주둔 방식의 효용성이 떨어진 건 사실입니다. 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특정 지역에 주둔하는 붙박이 미군을 전략적 상황에 따라 어디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2006년엔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기로 합의했고요. 미군이 주한미군을 빼서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 중국의 직접적 위협을 받는 국가에 보강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 해도 미군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게 대체적 견해입니다. 2004년 전국에 흩어진 미군 기지를 모아놓은 경기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가 사실상 ‘중국 견제 맞춤형’으로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도발하면 곧바로 미사일로 베이징을 타격할 수 있습니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미 본토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알래스카에서 탐지하는 데 15분이 걸리는데, 주한미군이 있기 때문에 8초 밖에 안 걸린다”며 “북한 공격에 대한 미 본토 방어에도 주한미군이 결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감축은 불가피할지 몰라도 전면 철수는 미군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거지요. 주독미군에 이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한 트럼프에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이 있는 것”이라며 맞선 것이나 공화당 벤 새스 상원의원이 “우리는 한국인 복리후생이 아닌 미국인 보호를 위해 한국에 병력과 군수품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주한미군 철수하면, 북한 방어할 플랜B 없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 전면 철수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우리 손해가 더 크다고 말합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무참하게 희생된 ‘효순ㆍ미선이 사건’과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비용을 미루려는 미군의 오만방자함으로 보통 사람에겐 ‘피해만 주는 미군’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는 ‘미군 주둔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군사력 6위로 거듭났다고 해도, 북한 방어에 주한미군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 조항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의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미군은 한반도로 안 들어올 수 있다”며 “그러나 미군이 주둔하면 개입을 안 할 수 없다. 유사시에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방위비 분담금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많이 가져도 핵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하려면,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아니더라도 중국을 견제할 다양한 수단이 있지만, 우리에겐 플랜B도 없습니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남한을 제외한 채 미군의 동북아 방위선을 그리면서 북한의 도발을 가능케 했다는 이른바 ‘애치슨 선언’을 곱씹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지금은 평온해도 미군이 한반도를 뜨는 순간, 북한이 또 다시 남침을 시도할지 모릅니다. 1970년대 지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예의주시하며 한반도 장악을 호시탐탐 노렸던 것도 김일성 북한 주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67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최대 빈곤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을 ‘미군 주둔 효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주한미군이 안보 리스크를 줄여준 덕분이라는 거지요. ‘서울 불바다’ 속에서 삼성, 현대차와 같은 글로벌기업이 탄생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1992년 반미감정 확산으로 미군을 철수시켰던 필리핀 사례를 주목할 필요도 있습니다. 미군이 떠나면서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에서 중국의 도발은 잦아졌고, 안보 리스크가 커진 필리핀에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군사적, 경제적 손실은 커졌습니다. 이후 양국은 1999년 미군이 합동군사훈련을 위해 일정기간 체류할 수 있도록 한 방문군 협정을 맺었지요.


우린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미 의회는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합의안에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5G 기술을 사용하면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한동안 미국은 이런 식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 못하는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체적으로 핵개발도 못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한, 우리의 선택은 미군의 주둔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역설적으로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육군 중장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1970년대 우리의 필사적인 자주국방 노력이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를 백지화시키고 한미연합사령부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며 “우리가 자주 국방력을 강화해서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키우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의 주한미군 감축 혹은 재배치 논의가 대체로 미국의 일방적 통보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쌍방이 윈윈(win-win)하는 방식이 되길 바랍니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