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시작되면서 반려견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일 겁니다. 지난해 2월 개정된 동물보호법 13조에는 ‘맹견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나 재산상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이 조항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월12일부터 시행되는 것이죠. 만일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되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맹견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맹견 책임보험 의무가입’ 제도는 지난해 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0~2024 동물복지 종합계획’에 포함됐습니다. 농식품부는 당시 맹견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를 ‘개 물림 사고 방지 예방체계 구축’의 일환이라고 소개했죠. 그렇다면 이 제도는 잘 안착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책임보험 의무 가입은 ‘개 물림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요?
보험 가입자 수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여기저기서 보험 가입이 지지부진한 정황들이 많이 엿보입니다. 우선 ‘맹견 책임보험’ 상품을 출시한 보험사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재 맹견 책임보험 상품을 출시한 회사는 NH손해보험과 하나손해보험 단 두 곳뿐입니다.
법 시행 시점까지도 상품을 출시한 회사가 적은 이유는 작은 시장 규모에 있습니다. 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은 ‘맹견’에 제한됩니다. 다른 개보다 더 숫자가 적죠. 보험업계는 가입 대상의 맹견을 최대 1만 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시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겁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우리 회사도 보험 출시를 검토하고 있지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최대 8,000만원까지 보장 가능한 책임보험 상품의 보험료를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지 계산하는 '상품개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보험사는 많겠지만, 대부분 수익을 기대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만큼 시장 규모가 작고, 상품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뜻이죠. 그래서 의무보험 가입 제도를 마련한 정부와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관계자는 “정부와 업계의 소통이 조금 더 긴밀했으면 보험 상품 마련에 더 속도가 붙었을 것”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개 물림 사고는 품종을 크게 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개 물림 사고의 상당수는 맹견으로 분류돼 있지 않거나, 소형견에 의해 발생한 사고입니다.
그래서 ‘맹견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는 그다지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개의 공격성은 품종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사육 행태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냥개와 투견처럼 싸움 자체를 목적으로 키워지는 개들에게서 공격성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뜻이죠. 설사 사냥개나 투견이 아닌 반려견이라 하더라도, 사육 방식이 잘못되면 품종과 상관없이 개는 공격성을 드러내죠.
이 대표는 “선진국 대부분은 사고를 일으킨 경력과 기질 평가 등을 바탕으로 ‘위험한 개’(Dangerous dog)를 분류하고 있다”며 “위험한 개 평가 제도가 국내에 도입 단계를 밟고 있는 만큼 이 제도를 기반으로 책임보험 의무 가입 제도를 다시 손봐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위험한 개’를 평가하고 등록해 관리할 수 있다면 위험 대상을 더 엄밀하게 분류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죠.
맞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죠. 이곳에서는 반려견을 키우면 반드시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06년 1월1일 이후 태어난 반려견을 키우는 반려인은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동그람이의 ‘글로벌 반려통신’을 통해 오스트리아 소식을 전해주는 김유리 통신원은 “처음 반려견을 입양했을 때 담당 기관으로부터 ‘책임보험에 가입하라’는 안내 편지를 받았다”고 제도를 소개했습니다.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최대 3,500유로(약 47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제도를 한국에 도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독일의 법에는 물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귀책사유를 따지지 않고 반려인이 배상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법적 책임을 무조건 반려인에게 지우는 만큼 책임보험 가입이 활성화됐다는 뜻이죠. 이 대표는 “독일과 우리의 법체계와 시민들의 인식이 다른 만큼 이 제도를 직접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보험은 어디까지나 개 물림 사고 예방보다는 ‘사고 이후 조치’에 가깝습니다. 김유리 통신원은 “책임보험 의무 가입은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기보다는 사고의 뒤처리에 도움이 되는 제도 같다”고 말합니다. 가령 산책을 대신해주는 ‘도그워커’나 반려견 유치원처럼 반려인 대신 업체에게 반려견 관리를 위탁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뜻이죠.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개 물림 사고 예방 체계’ 마련이라는 제도 취지와는 다소 맞지 않는 측면도 보입니다.
이 대표는 “개 물림 사고를 제대로 예방하려면 책임보험 가입만으로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반려인들의 책임의식을 제고하는 ‘교육의 활성화’를 주문했습니다. 그는 현재 농식품부가 추진 중인 ‘사전교육 이수제’를 들며 “반려동물을 집에 들이기 전에 반려인에게 필요한 제도, 책임의식 등을 알려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시작되는 ‘맹견 책임보험 가입 의무’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보험사와 반려인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이것만으로는 ‘개 물림 사고 예방체계’를 구축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농식품부의 동물복지 종합계획에 포함된 사전교육 이수제와 ‘위험한 개 평가체계 마련’ 등 후속 대책도 빠른 시일 안에 도입돼야 개 물림 사고로부터 반려인도, 비반려인도 안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