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위로 바뀌는 베트남의 권력 서열은 언제나 현재와 미래가 혼재돼 있다. 20여명 안팎의 공산당 중앙당 정치국원들을 대상으로 근거리 미래까지만 쓸 자원과 5년 뒤 중용할 인재를 정해 줄을 세우는 방식이다. 베트남의 내부 권력 구조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제13차 공산당 전국대표회의(당대회)를 통해 낙점된 현재와 미래 권력 중 ‘지한파(知韓波)’가 대거 포진돼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권력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76) 서기장과 2인자 응우옌쑤언푹(66) 국가주석부터 대표적인 친(親)한국 인사로 꼽힌다. 쫑 서기장은 2008년 국회의장 신분으로 방한 당시 외교 일정을 쪼개 하노이에 랜드마크72 타워를 짓고 있던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을 만났다. 서기장이 된 뒤인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무실을 직접 찾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에 진출한 1세대 한국 기업인들과 지금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푹 주석은 지난해 한국 기업인과 가족 등 1만8,000여명의 특별입국을 최종 승인한 당사자다. 또 현지 우리 기업들의 인ㆍ허가 문제 등 사업 민원을 다수 해결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하노이 당서기를 지낸 권력서열 3위 브엉딘후에(63) 차기 국회의장도 베트남 정가에선 지한파로 분류된다. ‘빅4’ 가운데 팜민찐(62) 차기 총리 만이 유일하게 일본과 가까운 최고위층 인사다. 그는 최근까지 베트남-일본기업 친선 모임의 수장을 맡은 바 있다.
정치 명문가 2세들과 한국의 인연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두 주자는 서열 6위 보반트엉(50) 당 중앙선전교육위원장이다. 베트남 개혁ㆍ개방의 토대를 닦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의 입안자 보반끼엣 전 총리가 그의 아버지다. 보반트엉 위원장은 12차에 이어 이번 당대회에서도 유일한 1970년대생 정치국원에 이름을 올렸다. 서기장의 오른팔인 당 상임비서 후보로 유력한 그는 호찌민에서 상무 부비서를 하면서 한국에 관심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서열 7위 팜빈민(61) 외교장관 역시 부친 응우옌꺼따익 전 외교장관에 이어 2대째 한국과 각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민 장관은 양국 수교의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 쩐득르엉 전 국가주석의 아들인 서열 17위 쩐뚜언아인(56) 산업통상부 장관도 현지에선 지한파 차세대 정치인으로 꼽힌다. 베트남 정가 관계자는 8일 “지한파 인사 대부분이 유임되거나 승진해 2021년 30주년을 맞는 한-베트남 수교 관련 일정이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