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지도자 ‘나발니 사태’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던 러시아가 두 갈래 해법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알렉세이 나발니 실형 선고로 불거진 내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민생 지출 확대’ 방안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반면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에는 협상 불가를 고수하며 ‘강대강’ 대응 의지를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외교 단절을 감수해도 내정 간섭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9월 예정된 총선(국가두마ㆍ하원)을 앞두고 최소 5,000억루블(약 7조5,288억원) 민생지출 패키지를 고려하고 있다. 5,000억루블은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예상치의 0.5%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통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조만간 대중 연설을 통해 ‘돈폭탄’ 패키지를 공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구상에는 지속된 경제 침체로 고통 받은 서민들이 나발니 구속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등 시위 양상이 반(反)정부 투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저유가 등 여파로 지난해 2분기 러시아 국민소득은 1999년 이후 최대 낙폭인 전년동기 대비 8.4% 감소하는 등 나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 정부 소식통은 “당국이 위기를 인식하고 서민 경제를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목적”이라고 민생 패키지의 취지를 설명했다.
아직 세부 예산활용 방안은 공개되지 않았다. 로이터는 과거 사례를 토대로 어린 자녀를 둔 저소득 가정 대상 보조금 확대 정책 등을 예상했다. 다만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 측은 “알지 못한다”면서 재정지출 확대 구상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내부적으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과 달리 러시아 정부는 서방국가들의 인권 침해 지적에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외교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5일 러시아가 독일ㆍ스웨덴ㆍ폴란드 외교관들을 나빌니 석방 불법 시위 참가를 이유로 추방 명령을 내리자 이들 국가도 맞추방으로 대응했다. 독일 외교부는 이날 러시아 대사관 소속 직원 1명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스웨덴과 폴란드 외교 당국도 트위터를 통해 각각 러시아 대사관 직원 1명에게 자국에서 떠나라고 통보했다. 4~6일 러시아를 방문한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전날 “러시아는 EU와의 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음을 증명했다”면서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이에 맞서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자국 TV 방송 인터뷰에서 “독일 등의 (추방) 결정은 근거 없고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잇따른 내정 간섭 조치의 연장”이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