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이름표를 달고 '자기 정치'를 하는 건 쉽지 않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수반되는 총리 역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헌법상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만큼 중립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런 딜레마를 언론 인터뷰로 해결하는 모습이다. 주요 현안을 언론이 물으면 자연스럽게 답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정치인 정세균'의 존재감도 부각하고 있다.
1일 국무총리실에서 받은 '정 총리 언론 인터뷰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 14일 취임 후 정 총리는 총 60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1월 첫날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인터뷰는 18번이다. 전체 인터뷰 횟수의 30%에 해당한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지난달 14일과 전날인 13일 이틀 동안에만 7번의 인터뷰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는 개별 언론과의 인터뷰만 계산한 것이다. 외신기자 간담회(지난달 2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지난달 28일) 등 다수 언론과 만난 것까지 포함하면 언론 접촉 횟수는 더 늘어난다. 예정된 인터뷰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 "(방송을) 틀면 정세균"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총리실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컨트롤타워이기도 하지만,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 때문에 인터뷰 요청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질문은 대체로 국민적 관심이 쏠린 분야에서 나온다. 국정을 총괄하는 책임자인 정 총리의 답변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 총리 측은 이를 통해 정 총리가 자연스럽게 현안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인물 정세균'에 대한 인지도나 관심도 늘어나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정책 인터뷰를 통해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총리실 자체적으로 진행한 유튜브 방송 '총리식당' 같은 시도가 '과잉 홍보'란 비판을 받자 정통 언론 인터뷰를 통한 홍보에 더 힘을 쏟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해야 한다"(지난달 1일), "제도 개선 없이 공매도를 재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등 정 총리의 '굵직한' 목소리는 모두 인터뷰에서 나왔다.
정 총리는 거의 매일 주재하는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SNS를 통해서도 현안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광폭 행보는 청와대와도 어느 정도 교감이 있어 보인다. 최근 담뱃값 인상 및 술에 대한 건강증진부담금 부과 검토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했다가 논란이 되자 "추진 계획도 없다"며 정리한 이가 정 총리였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대응방안을 검토한 결과 정 총리가 매듭을 짓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4ㆍ7 보궐선거 이후 직을 내려놓을 것으로 여권에서는 보고 있다. 이미 후임 총리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의 핵심 측근은 "문 대통령이 '후임자를 추천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언론 인터뷰와 광폭 행보는 이어질 전망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큰 꿈을 위해 기지개를 켠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