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두고 가며 생모(생부)들이 남기는 것이 있다. 편지다. 하다못해 태어난 시각과 예방접종 여부라도 쪽지에 적어둔다.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인 베이비박스에는 그들의 편지 1,800여 통이 고스란히 보관돼있다.
친모들은 스스로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편지에서 일컫는다. 그래서 편지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미안하다”는 문구다. 임신에 이르게 된 책임, 아이를 낳고도 기르지 않고 버렸다는 죄의식이 평생 그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외도와 같은 혼외 관계로 출산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생부나 생모는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몫이기에 생부들은 생모의 뒤에 숨어 죄를 가릴 뿐이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친생부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례도 있지만, 1% 안팎으로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생부마저 외면해 결국 생모가 베이비박스까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엄마의 육필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이’라고 쓸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칸방 화장실에서 혼자 생살을 찢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도 그에겐 죄책감뿐이다.
“제가 일을 가면 혼자 굶으면서 울고만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어 누구보다 예쁘고 소중한 제 자식을 보냅니다. 아이가 열세 시간이나 배를 곯은 적이 있어 건강이 너무나 걱정돼요. 태몽은 □□였어요. 부디 사랑 많이 받는 아이로 키워주세요. 아이가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 역시 세상에 혈혈단신 혼자였던 엄마들. 그들은 인터넷을 뒤지고, 며칠을 고민하다 베이비박스로 왔다.
미성년의 엄마는 아이를 입양조차 보내지 못하는 게 애달파 또 운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도 없어서 부모의 입양 동의도 받지 못해요.” 비혼 상태에서 청소년모가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의 부모 동의까지 받아야 자녀를 입양 보낼 수 있다. 친모가 성인이더라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면 입양특례법상 입양은 불가능하다. 2020년을 기준으로,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 137명 중 65%가 그래서 보육원 등 아동복지시설로 가야 했다.
연습장이나 메모지, 심지어 광고지나 참고서를 찢어 여백에 비뚤비뚤 쓴 글씨들에선 갈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월 □시 (태어난) ○○입니다. 미혼모에다 쫓기는 처지라 이렇게 부탁드려요… 염치없이 의탁합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맡깁니다. 열심히 일해서 꼭 데리러 올게요.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지 말아 주세요.”
“1년 안에 자립해서 꼭 찾으러 오겠습니다. 뼈가 부서져라 일을 할 거예요. 꼭 1년 후에 찾아올게요. 정말 전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반드시 데려온다는 생각만 갖고 살게요. 부디 그동안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아이의 생부에게라도 의지할 수 있었다면, 베이비박스를 찾지는 않았을 테다.
“임신 6개월쯤 되니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폭력도 행사했어요. 자살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차마 그러지 못했어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아이에게 미안해서요. 제겐 희망이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 아빠와 헤어졌습니다. 혼자서라도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친정이란 것이 없는 제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요. 극도의 우울함과 불안함 속에서 50일을 버텼어요. 아이를 붙잡고 있는 게 더 못 할 짓인 것 같아요.”
“아이 아빠가 무책임하게도 저를 떠나버렸어요. 도저히 혼자서는 아이를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이별하고 나서 임신인 걸 알았어요. 남편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남편이 정말로 원망스러워요.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사실혼 관계로 1년 넘게 산 아이 아빠에게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제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그런데도 사과도 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빚까지 짊어진 채 혼자서 월세방에서 아이를 키울 일이 너무나 막막합니다.”
성폭력 피해로 가진 아이를 낳아온 엄마들의 정신적 고통은 더 극심하다.
“집단 강간으로 아이를 낳은 미성년자입니다. 부모님이 혹시라도 아실까 봐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제 영양실조 때문인지 아기도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지만 생명인지라 지우지 못했어요. 탯줄을 안쪽에 넣습니다. 제발 절 찾지 말아 주세요.”
세상은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냉정하다. 미성년자라면 더 냉혹하다. 그런 시선을 견디고 너의 생명을 지켰다고, 엄마들은 편지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편지 속 모성은, 실현되지 않은 기원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아이를 버렸다’는 마음 속 납덩이가 쉽게 사라질 수도 없다. 세상이 그들에게 찍는 주홍글씨는 사회와 아이의 친부들이 짊어져야 할 몫일 지 모른다.
▶①”띵~동! 1835번째 아기가 왔다, 베이비박스의 하루” 기사 보기
▶②“화장실서 낳은 핏덩이 교복에 싸서 베이비박스에 오는 심정 아시나요” 기사 보기